〈김진우의 성씨이야기〉 금강유역 토성(土城 )·입향성씨(入鄕姓氏) 15)순흥안씨(順興安氏) 18
실전된 묘대신 '추원단'에 제단 모셔
순흥안씨 안운산 태상(太上) 종도사(宗道師)는 1922년 충남 서산군 대산면 운산리에서 태어나 유소 시절부터 강증산 상제를 신앙하면서 자랐다.
문헌에 의하면 12세 때 2주 동안 집에서 수련을 하던 중 3일 만에 홀연히 영성이 열리는 큰 체험을 하고 강증산 상제의 천지대업이 천명임을 깨달아 안운산의 손으로 반드시 그 일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웅지를 품었다고 한다. 그 후 집을 떠나 국내는 물론 만주, 중국 등지를 주유하며 세상 인심과 전쟁의 참상 등을 직접 체험했다. 24세 되던 해 8·15 해방을 맞아 고향에 돌아온 안운산 태상(太上) 종도사(宗道師)는 증산 상제의 이념을 온 세상에 선포했다. 그리고 전국 각지를 돌며 신도 수십만을 규합했다. 이때가 증산도 제2 부흥시대다.
6·25가 발발하자, 전쟁의 포화 속에서 의통을 준비하던 안운산 태상종도사는 1952년에 고향을 떠나 공주(公州)로, 공주에서 다시 태전(太田, 대전의 본래 지명)으로 옮기고 대휴게기를 선포하고 은둔했다. 안(安) 태상종도사는 은둔생활 20년 동안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고행을 겪었다.
그 후 ‘갑을(甲乙)로 기두하라’는 강증산 상제의 명을 받들어 1974년(갑인년), 1975년(을묘년)에 아들인 안경전 종도사와 함께 강증산 상제의 후천 선경 건설의 푯대를 꽂은 태전(대전)에서 강증산 상제 도운을 마무리짓는 제3변 도운을 열었다.
순흥안씨(順興安氏) 추원단(追遠壇)은 영주시 순흥면 읍내리 산 21번지에 있는 순흥안씨 문중의 단소(壇所)이다.
시조 안자미(安子美)를 포함해 12위(位) 순흥안씨 선조의 묘(墓)가 실전(失傳, 대대로 이어온 묘지를 알수없게 됨)되어 그 묘(墓)를 대신해 제단(祭壇)을 모셔 놓은 곳으로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읍내리 산21번지, 종산(宗山)인 순흥의 명산(名山) 비봉산(飛鳳山) 남쪽 4만3천평에 조성했다.
왼쪽에는 출입구이며, 출입구 왼쪽 기둥에 숭조보본영세돈목(崇祖報本永世敦睦) 글귀가 있고, 오른쪽 기둥에는 순흥안씨(順興安氏) 추원단(追遠壇)이라는 글귀가 있다.
추원단(追遠壇) 아래에는 1996년 중건한 재실(齋室)인 약 165m² 규모의 추원재(遣遠齋)가 있어 세사를 받드는 데 필요한 제수 등을 준비하고, 후손들이 회의와 숙식을 하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추원단(追遠壇)에는 시조 이하 7대(代)에 이르는 이들의 사적과 관향지(貫鄕地)의 종사(宗史) 연혁, 추원단(追遠壇) 중건(重建)내용 등을 기록한 추원단비(追遠壇碑)도 세워져 있다.
순흥안씨(順興安氏) 추원단비(追遠壇碑)에는 시조 이하 7대에 이르는 순흥안씨 선조들의 빛나는 사적과 관향지(貫鄕地), 종사(宗事) 연혁, 종사에 힘쓴 선조들의 기적(紀蹟), 시조사단을 이전해 중건한 사실들을 기록해 놓았다. 이곳에서 매년 음력 10월1일 전국의 후손들이 모여 세사(歲祀)를 지내고 있다.
지난 2006년 행정도시 기본계획 세미나에서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 김효정 책임연구원이 발표한 ‘문화인프라 구축 기본방향’에 따르면, 세종시 연동면(옛 연기군 동면) 합강리의 합호서원, 남면 갈운리의 독립운동가 오강표 묘(墓),청원 성골산성 등 다양한 문화재급 자원이 세종시에 분포하고 있다. 자연 마을로는 부안 임씨(林氏) 집성촌으로 전통적 마을 입지를 이루고 있는 연기군 남면 양화리를 비롯, 여양 진씨(陳氏) 집성촌으로 배산임수의 경관을 갖춘, 남면 반곡리, 순흥안씨(順興安氏) 집성촌으로 합호서원(合湖書院)을 비롯한 다양한 유교문화경관을 보유한 세종시 연동면 합강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