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우의 성씨 이야기〉 금강유역 토성(土姓)·입향성씨(入鄕姓氏) 16)경주김씨(慶州金氏) 4

거주지·현달한 인물 중심으로 분관
(顯達·벼슬·덕망이 높아 이름을 세상에 드날림)

2014-05-30     김진우

경주김씨 계림군파(鷄林君派)는 대장군공파(大將軍公派, 김순웅)에서 나온 파(派)로 김순웅의 13대손인 계림군 김균은 시호는 제숙(齊肅)으로 문하부지사 김지윤(金智允)의 아들이다. 1360년(공민왕 9년) 성균시(成均試)에 합격한 뒤 공양왕때 친구인 조준(趙浚)의 천거로 전법판서(典法判書, 정3품 장관)에까지 승진했다.

그는 조선개국후 개국3등공신에 책록돼, 계림군(鷄林君)에 봉해지고,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 왕명을 출납하고 궁중을 숙위하던 중추부의 3품)를 거쳐, 숭록대부(崇祿大夫, 종1품품계)로 좌찬성(左贊成, 의정부 종1품 재신)에 이르렀다. 경주김씨는 후손들이 번성함에 따라, 살고 있는 지역이나 현달(顯達, 벼슬이나 덕망이 높아서 이름을 세상에 드날림)한 인물 중심으로 분관 됐다.

영분공파의 파조(派祖)인 김명종은 고려에서 경주군(慶州君)에 봉해졌으며, 6세손 김예겸(金禮謙)이 고려때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으로 내중령(內中令, 종1품 재상)을 지냈다. 김예겸의 손자 김의진(金義珍)은 고려시대 사학(私學)12공도(公徒)의 하나인 양신공도(良愼公徒)를 육성했으며 문종 때는 참지정사(參知政事, 종2품 재상반열)로 지공거(知貢擧, 과거시험관)를 겸해 인재 등용에 공헌했다. 이후 평장사(平章事, 중서문하성의 정2품 부총리)를 역임했다.

김의진의 증손자 김영고(金永固)는 무신의 난을 일으킨 정중부와 이의방을 제거하려던 인물이다. 김영고의 아들 김인경(金仁鏡)은 문무를 겸비한 고려의 명신으로 고종 때 조충과 함께 강동성에서 거란군 평정에 공을 세우고, 벼슬이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정2품 부총리)에 이르렀으며 시문(詩文)과 예서(隸書)로 명성을 떨쳤다.

대안군(大安君)파 파조(派祖)인 김은열은 공부시랑(工部侍郞, 정4품 차관)을 거쳐, 대안군(大安君)에 봉군됐으며, 그의 후손들이 여러 본관으로 분관됐다.김은열의 8세손 김봉모는 외국어에 능해 사신이 오면 관반사(館伴使, 외국사신을 맞이하기 위해 임시로 임명한 정3품)로 천거됐고 나라의 일에 항상 전례(典禮)의 일을 맡아 봤다.

김봉모의 아들 김태서(金台瑞, 경주김씨에서 전주김씨로 분파 1세조)는 고종 때 한림학사(翰林學士, 고려때 문신 가운데 뽑힌 뛰어난 학자로 한림원 등의 종3품 정4품)를 거쳐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정2품)에 이르렀고, 특히 그의 아들 김약선은 공부시랑(侍郞, 정4품 차관)을, 김기손은 평장사(平章事, 중서문하성의 정2품), 김경손(金慶孫)은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왕명을 출납하고 궁중의 숙위를 담당하던 추밀원의 정3품)를 지내 3형제가 유명했다.

고려의 무인시대는 1170년(의종 24년) 8월 정중부(鄭仲夫), 이의방(李義方) 등이 반란을 일으켜 문신들을 살해하고 의종(毅宗)을 추방한 자리에 명종(明宗)을 세움으로써 막이 올랐다. 이후 이의방에서 정중부, 경대승(慶大升), 이의민(李義民)으로 이어지던 무신권력은 1196년(명종 26년) 이의민이 최충헌(崔忠獻)에 의해 제거되면서, 최충헌, 최이(崔怡, 초명은 우), 최항(崔沆), 최의(崔竩)로 세습됐다.

김약선(金若先, 시호 장익)은 최이의 사위이며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문하시랑 평장사(平章事, 정2품부총리)와 대제학(大提學)을 지낸 김태서(金台瑞, 전주김씨 시조 김태서도 본래 경주김씨)의 아들이다. 1225년(고종 12년) 궁궐을 수리할 때 고종은 김약선의 집을 임시 거처로 사용할 만큼 그를 총애했다. 1235년(고종 22년) 6월 24일 김약선은 딸이 태자비가 되자 차츰 벼슬이 올라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정령을 출납하던 추밀원의 정3품으로 1095년에 중추원 부사를 고친것)가 됐다.

최이는 자신의 후계자로 김약선을 점찍고 있었다. 물론 최이에게는 애첩인 기생 서련방(瑞蓮房) 소생의 만종(萬宗)과 만전(萬全)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지만, 출생에 흠이 있어 문벌 좋은 사위 김약선을 후계자로 내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김약선은 엉뚱한 일로 최이의 미움을 사서 죽고 말았다. 최이의 딸이자 김약선의 처인 최씨는 태자비의 어머니로서 궁궐에 드나들 때 가마와 의복을 왕비처럼 해 세인의 비난을 받던 인물이다. 한번은 김약선이 장인의 부중에 있는 낭자들을 망월루(望月樓) 모란방(牧丹房)에 모아놓고 음란한 짓을 벌인 적이 있었다.

질투심이 폭발한 그의 처가 친정아버지인 최이에게 달려가 “나는 집을 버리고 비구니가 되겠나이다”하자 노한 최이는 김약선과 관계한 여자들을 섬에 유배시키고 누와 방을 없애버렸다. 이런 일이 있은 뒤 김약선은 자신의 처가 종과 간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는데 이를 눈치 챈 그의 처가 먼저 최이에게 남편을 무고해 죽게 만들었다. 뒤늦게 사건의 본말을 알게 된 최이는 크게 후회하며 딸과 간통한 종을 죽이고 딸을 멀리해 종신토록 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