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우의 성씨 이야기〉 금강유역 토성(土城 )·입향성씨(入鄕姓氏) 광주이씨(廣州李氏) 15
조선중기 칠곡 출신 의병 이서우
고려 때 이집(李集)을 중흥시조로 한다.
칠곡군에서 세계(世系)를 이어오는 광주이씨(廣州李氏)는 승사랑(承仕郞, 조선시대 종8품 문신의 품계명)에 오른 이지(李摯)를 칠곡 입향(入鄕), 중조(中祖)로 하는 광주이씨의 후손이다.
석담 이윤우(李潤雨)의 종제(從弟)이고 첨정(僉正,종4품) 이광복(李光復)의 둘째아들이다.
1584년(선조 17년)에 태어나 무과(武科)에 급제해 용양위(조선 전기 중앙군의 근간인 5위의 하나)의 부사과(副司果, 종6품) 등을 역임했다. 병자호란 1637년(인조 5년) 1월에 군사 500명을 이끌고 상경해 경기도 안성의 죽산(竹山) 쌍령진(雙嶺陣) 전투에서 순사(殉死)했다.
경북 칠곡군 지천면 신리 상지(上枝)에서 살았다.
묘소는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연화리 신목동에 있다.
공훈으로 중훈대부(中訓大夫, 종3품 문관의 품계)로 군기시(軍器寺, 병기의 제조 등을 관장한 관청)의 부정(副正, 종3품)에 증직됐고,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연화리 신나무골 위쪽에 묘비(墓碑)가 있다.
조선 후기 칠곡 출신 문신 이만운
이만운(李萬運, 본관은 광주, 자는 원춘, 호는 묵헌)은 조선 후기 칠곡 출신의 문신(文臣)이다. 귀암(歸巖) 이원정(李元禎)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중추부의 종2품차관)를 지낸 이동영(李東英)이고, 어머니는 의성김씨, 부인은 평산신씨(申氏)이다.
1736년(영조 12년)에 태어나 생원시(生員試)를 거쳐 1777년(정조 1년) 증광문과(增廣文科, 나라에 큰 경사가 있을 때 보던 과거)에 을과로 급제해 주부(主簿, 6품 주무관), 좌랑(佐郞,6품 주무관)도사(都事, 종5품) 등을 역임했다.
경종 연간의 신임옥사 때 4대조 이담명(李聃命)이 앞서 숙종 연간의 경신환국(庚申換局) 때 희생된 자신의 아버지 귀암(歸巖)이원정(李元禎)의 원수를 갚으려 했다는 죄목으로 형벌 받은 일로 인하여 벼슬길이 막혔다.
1795년(정조 19년)에 특별한 교지로 불러 인견하고는 하교하기를 “이제야 스승 삼을 선비를 얻었다”고 했다.
드디어 백관을 규찰, 탄핵하던 사헌부의 청요직인 정5품 지평(持平), 안의현감(縣監, 종6품 수령), 사간원의 정6품 간언관인 정언(正言) 등에 이르렀으나 요직에는 나아가지 못했다.
벼슬은 통정대부(通政大夫, 정3품 당상관품계)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중추부의 정3품 당상관)에 그쳤다. 문장과 덕망이 뛰어나고 높아 유장(儒匠)이 됐으며, 천문, 지리, 역산(曆算), 명물(名物) 등에 밝았다.
경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에 살았다. 증보동국문헌비고(增補東國文獻備考)를 9년간에 걸쳐 편찬했으며, 저서로 묵헌문집 등 유집(遺集) 수십 권이 있다. 묘소는 경북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관기촌 앞에 있다.
회당(晦堂)장석영이 묘갈(墓碣)을 지었다.
사후 유림공론에 의해 불천위(不遷位)로 제향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