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우의 성씨 이야기] 금강유역 토성(土城 )·입향성씨(入鄕姓氏)

18) 광주이씨(廣州李氏) 18

2015-07-23     금강일보

생원시와 문과, 두번이나 장원급제 이원록(李元祿)


이원록(李元祿, 본관은 광주, 자는 사흥, 호는 박곡)은 조선 중기 및 후기 칠곡 지역 출신의 문신(文臣)이다. 아버지는 부응교(副應敎, 홍문관에 딸려 궁중의 경서, 사적을 관리하던 종4품 서기관)를 지낸 이도장(李道長)이고, 어머니는 안동 김씨, 부인은 광주 이씨, 순흥 안씨이다.

미수허목의 문하에서 수학해 1648년(인조 26년)에 향시(鄕試, 각 도에서 실시하던 문과·무과·생원진사시의 제1차 시험)에 합격, 1651년(효종 2년)에 생원시(生員試)에 장원으로 합격했다.

세마(洗馬, 세자 익위사에 속한 정9품) 시직(侍直, 조선 초기 세자숙위사의 정8품직으로 세자의 시위를 맡았음)에 임명돼 1663년(현종 4년)에 을과 장원으로 문과(文科, 대과)에 합격했다.

1665년(현종 6년)에 성균관의 전적(典籍)을 거쳐 형조좌랑(佐郞, 정6품 주무관), 병조좌랑, 장연부사(府使, 정3품 수령), 의주부윤(府尹, 2품 지방장관), 호조참의(參議, 정3품 차관보), 병조참의(參議, 정3품 국방차관보), 경상도관찰사(觀察使, 종2품 감사), 함경감사(監司, 종2품 관찰사), 예조참판(參判, 종2품 차관) 등을 역임했다.

1680년(숙종 6년)에 백관을 규찰·탄핵하던 사헌부의 종2품수장인 대사헌(大司憲, 검찰총장)이 돼 다섯 차례나 역임했다. 천성이 간엄(簡嚴)하고 몸가짐이 청령하고 검소해 명위(名位)로 자처하지 않았다. 경신참화로 1681년 안동 박곡(朴谷)으로 옮겨 은둔했으며, 은둔한 마을 이름을 따서 호(號)를 박곡(朴谷)이라 했다.

1688년(숙종 14년)에 세상을 떠나자 왕명으로 제문(祭文)을 내렸는데, 그 내용은 “천성적으로 타고남이 성실하고 정성스러워 사문(師門)에 모범이 됐다”라고 했다.

불천위(不遷位, 나라에 큰 공훈이 있거나 도덕성과 학문이 높으신 분에 대해 신주를 땅에 묻지 않고 사당에 영구히 두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허락된 신위를 말함) 봉사(奉祀)이며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에서 살았다.

저술 및 작품으로 박곡집(朴谷集)이 있다. 묘소는 경남 의령군 낙서면 두곡리에 있다. 묵헌이만운이 지은 묘비문(墓碑文)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