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우의 성씨 이야기] 금강유역 토성(土城 )·입향성씨(入鄕姓氏)

18)광주이씨(廣州李氏) 19
조선중기 칠곡출신 문신 이연정

2015-08-06     금강일보
▲ 칠곡군 지천면 신리 상지마을 출신 이연정 묘비.

 

이연정은 1629년(인조 3년)에 태어나서 1654년(효종 5년)에 무과에 급제했으며 경상우도(慶尙右道)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역임했다.

비문(碑文)에는 ‘가선대부(嘉善大夫, 종2품 차관품계)로 행(行)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종2품) 이공지묘(李公之墓) 배위는 정부인(貞夫人, 2품 외명부 작호) 여흥 이씨(여주 이씨) 부’라고 기록돼 있다. 이한명(李漢命, 본관은 광주. 자는 남기, 호는 낙애)은 조선 중기 칠곡 출신의 문신(文臣)이다. 아버지는 귀암(歸巖) 이원정(李元禎)이며 어머니는 벽진 이씨, 부인은 전주 이씨이다.

1651년(효종 2년)에 태어나 1666년(현종 7년)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했고, 1699년(숙종 25년)에 문과(文科, 대과)에 급제했다. 벼슬은 한림(翰林, 예문관의 정9품 검열)을 역임했는데, 모두 4대(代)를 이어 한원(翰苑)에 들어간 것이다.

벼슬은 홍문관의 5품 교리(校理)에 이르렀으며 홍문관의 정4품 응교(應敎)에 증직됐다. 한원(翰苑, 예문관)에 있을 때는 숙종께서 연소하지만 박식(博識)하다고 유신(儒臣)과 같이 경연(經筵)에 들어와 치도에 대해 의견을 말하고 주역(周易)을 진강하게 했다. 한때 문학의 선비를 선택할 때 이한명을 으뜸으로 삼았으며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이암에 살았다. 묘소는 경상북도 성주군 용암면 상언리에 있다. 참판(參判, 종2품 차관) 이담명(李聃命)이 묘지(墓誌)를 지었다.

이현명(李顯命, 본관은 광주. 자는 여회, 호는 초당)은 조선 후기 칠곡 출신 유생이다. 낙촌 이도장(李道長)의 손자이고 참봉(參奉, 종9품) 이원지(李元祉)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진주 정씨, 부인은 파평 윤씨이다. 1658년(효종 9년)에 태어나 1677년(숙종 3년)에 23세의 나이로 생원시(生員試)에서 장원으로 합격 했다. 문장과 행실이 일찍이 드러나 평판이 자자하게 성대했다. 1719년(숙종 45년)에 방례(邦禮)에 대해 소(疏)를 올리는 우두머리가 됐다. 묘소는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대법곡에 있다. 증손 이동급(李東汲)이 비갈(碑碣)을 지었다.

이귀명(李龜命, 본관은 광주. 자는 우서)은 조선 중기에 칠곡 출신의 유생(儒生)이다.고려 때 판전교시사(判典校侍事) 이집(李集)을 중흥시조로 하고, 칠곡군에서 세계(世系)를 이어오는 이지(李摯)를 칠곡 입향조(入鄕祖)로 하는 광주 이씨(廣州李氏)이다. 아버지는 문익공 이원정(李元禎)이며 어머니는 벽진이씨, 부인은 해주 정씨, 풍산 김씨이다.

1660년(현종 1년)에 태어나 1675년(숙종 1년)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했다. 1689년(숙종 15년)에 성현(省峴) 찰방(察訪, 종6품)에 임명됐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기량이 높고 반듯하고 재주와 덕행이 높고 순수해 조정에서 장차 크게 임용하려 했으나 엄숙하게 사양하고 피했다.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구바우)에서 살았다. 묘소는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금호리 자원산 선영에 있다.

이주명(李周命, 본관은 광주. 자는 신경)은 조선 후기 칠곡 출신의 유생이다. 박곡 이원록(李元祿)의 장자(長子)이며, 어머니는 광주 이씨, 부인은 순천 박씨이다. 1662년(현종 3년)에 태어나 1679년(숙종 5년)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해 1691년(숙종 17년)에 성현도(省峴道) 찰방(察訪, 종6품)에 임명됐으며 선정비(善政碑)가 있다. 벼슬은 형조좌랑(佐郞, 법무부 정6품주무관)에 올랐으며, 빈곳 없이 가득히 참을 경계하고 두려워해 과거 공부를 일찍이 그만뒀다. 사양서원을 상지로 이건했으며,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에서 살았다. 묘소는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북평 당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