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우의 성씨 이야기] 금강유역 토성(土城 )·입향 성씨(入鄕姓氏) 21

18)광주이씨 21

2015-08-27     금강일보

필법으로 이름 날린 이동익

이만영(李晩榮, 본관은 광주, 자는 덕은)은 조선 후기 칠곡 출신의 문신(文臣)이다. 아버지는 이정립(李廷立)이고, 어머니는 광주 노씨, 부인은 성주 이씨이다.

1717년(숙종 43년)에 태어나서 1759년(영조 35년)에 별시문과(別試文科,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보던과거)에 장원급제했다. 벼슬은 좌랑(佐郞, 정6품 주무관)을 역임했으며, 경술(經術)과 사장(詞章)은 세상에서 칭송을 받았다.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에 살았다. 묘소는 칠곡군 지천면 송정리에 있다. 문집으로 적와집(適窩集)이 있다.

이동익(李東翼, 본관은 광주, 자는 중려, 호는 어호)은 조선 후기 칠곡 출신의 유생(儒生)이다. 1733년(영조 9년)에 태어나 1762년(영조 38년)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했다. 문예를 일찍이 성취해 필법(筆法)으로 세상에 이름을 날렸으며,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에 살았다. 묘소는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사라지(沙羅池) 남쪽에 있다.

이기중(李沂中, 본관은 광주, 자는 숙정, 호는 매호)은 조선 후기 칠곡 출신의 문신(文臣)이다. 이지(李摯)를 칠곡 입향조(入鄕祖)로 하는 광주 이씨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이세용(李世瑢)이고, 어머니는 남원윤씨, 부인은 풍천 임씨이다.

1741년(영조 17년)에 식년문과(式年文科, 3년마다 보던 정기과거)에 급제해 사헌부의 정6품 감찰(監察, 대검찰청 검사), 예조좌랑(佐郞, 정6품 주무관), 해운판관(海運判官, 종5품) 등을 역임하고 벼슬은 좌랑(佐郞, 정6품)에 그쳤다.

총명하고 강정(剛正)했으며, 효우(孝友)는 하늘이 내린 인물이라 칭했다.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에 살았다.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기성리에 있다. 이덕중(李德中, 본관은 광주, 자는 군보)은 조선 후기 칠곡 출신의 유생(儒生)이다. 사헌부의 종2품 수장인 대사헌(大司憲, 검찰총장)을 지낸 박곡(朴谷)후손으로 이세린(李世璘)의 아들인데, 출계(出系)해 이세위(李世瑋)의 대(代)를 잇는 아들이 됐다. 어머니는 순천 박씨, 부인은 의성 김씨이다.

1731년(영조 7년)에 태어났다. 학식이 고명(高明)하고 몸을 지킴에 행동이 바르고 점잖았으며, 사림(士林)에서 두암거사(斗巖居士)라 했다. 시문(詩文)을 모아서 만든 책이 있다고 전해지며,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 1리(상지)에 살았다. 묘소는 경상북도 칠곡군 자원촌에 있다. 이동항(李東沆, 본관은 광주, 자는 성재, 호는 지암)은 조선 후기 칠곡 출신의 유생(儒生)이다. 참봉(參奉, 종9품)을 지낸 이원지(李元祉)의 후손으로 이항중(李恒中)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강릉 김씨, 부인은 성산 여씨이다.

1736년(영조 12년)에 태어났다. 도덕심이 순박하고 후해 학식이 널리 통했다. 정호(程顥), 정이 및 주희의 서적을 깊이 연구하고 원리를 파고들었으며 어진 선비의 문집을 즐겨 연구했다. 전서(篆書)로 세상에 이름이 났고,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리 상지에 살았다.

전서(篆書)로 이름이 났으며, 시문(詩文)을 모아서 만든 책이 있다고 전해진다. 묘소는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용암산에 있다.

사헌부 정4품 장령 역임한 이동적


이동인(李東仁, 본관은 광주, 자는 영숙)은 조선 후기 칠곡 출신의 문신(文臣)이다. 광주 이씨의 후손으로 대사헌(大司憲, 검찰총장)을 지낸 이원록(李元祿)의 현손(玄孫, 고손자)이다. 아버지는 이덕중(李德中)이고, 어머니는 의성 김씨, 부인은 밀양 박씨이다.

1752년(영조 28년)에 태어나 1783년(정조 7년)에 식년문과(式年文科, 3년마다 보던 정기과거) 갑과에 급제했다. 벼슬은 태조(太祖)의 영정(影幀)을 봉안한 전주 경기전(慶基殿)의 전령(殿令)을 지냈다. 성품이 충후(忠厚)하고, 정직해 인망(人望)이 있었으며, 칠곡군 지천면 상지(현재 신리)에 살았다. 묘소는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금호리 자원촌에 있다.

이동적(李東迪, 본관은 광주, 자는 혜지, 호는 담수)은 조선 후기 칠곡 출신의 문신(文臣)이다. 생부(生父)는 이덕중(李德中)이고 이효중(李孝中)의 양자로 입계(入系)했다. 어머니는 의성 김씨, 부인은 진주 류씨이다.

1769년(영조 45년)에 태어나서 1813년(순조13년)에 문과(文科, 대과)에 급제해 왕의 잘못을 간언해 바로잡던 사간원의 정6품 간언관인 정언(正言), 백관을 규찰·탄핵하던 사헌부의 정5품 지평(持平,대검찰청 검사), 사헌부의 정4품 장령(掌令, 대검찰청 부장검사)을 역임하고 벼슬은 홍문관의 교리(校理, 문한편수의 일을 하던 청요직의 5품)등 청요직을 지냈다. 학식이 고명해 당시의 재상(宰相)이 추천했으며, 남긴 문집이 있다. 칠곡군 지천면 신3리에 살았다.묘소는 칠곡면 태전동(현재 대구 북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