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우의 성씨 이야기] 금강유역 토성(土城 )·입향 성씨(入鄕姓氏) 추계추씨
고려 인종 때 함흥에 정착한 추엽이 시조
2015-10-22 금강일보
추계(秋溪)는 현(現) 경기도 용인시 양지(陽智)지방으로, 1399년(조선 정종1년) 처음으로 현(縣)을 두고 양지(陽智)로 했다. 1413년(태종13년)에 현감(縣監, 종6품 수령)을 두고 치소를 광주 추계향(秋溪鄕)으로 옮기고 죽주(竹州)의 고안·대곡·목악·제촌 4부곡(部曲)을 병합해 충청도에서 경기도로 이속했다. 1895년(고종32년)에 군으로 승격하고 1914년 용인군(龍仁郡)에 병합했다.
추씨 9백년사(秋氏九百年史)에 의하면 추엽(秋饁)의 아들 추황(秋簧)이 1209년(희종5년) 성균시험(成均試驗)에 장원급제하고, 1213년(강종3년) 문과(文科, 대과)에 급제한 후 예부상서(禮部尙書, 정3품 장관), 예문관(藝文館)의 대제학(大提學, 고려 때는 제찬과 사명을 맡아보던 관청의 2품 문형) 등을 지냈으며, 추황의 아들 추적(秋適)은 문장에 뛰어났고 민부상서(民部尙書, 정3품 장관)와 예문관(藝文館)의 대제학(大提學) 등을 역임한 후 시랑(侍郞, 고려 때 정4품 차관) 겸(兼) 국학교수(國學敎授, 국자감의 교수, 국자감은 고려 때 유학을 가르치던 최고 교육기관)에 이르렀다. 그는 명심보감(明心寶鑑, 조선 때 어린이들의 인격 수양을 위해 엮은 한문교양서)의 편자(編者)로 유명하며 명심보감을 중국에 전파하였다.
이부시랑(吏部侍郞, 정4품 차관)을 지낸 추천일(秋天日)의 아들 추수경(秋水鏡)은 명나라에 건너가 무강자사(武康刺史, 지방장관)로 재임 중, 조선에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원병으로 이여송의 부장(副將)이 되어 아들 추노(秋蘆), 추추(秋萩) 형제와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와 곽산, 동래 등지에서 많은 전공을 세우고 정유재란(丁酉再亂, 임진왜란 중 화의교섭의 결렬로 1597년(선조30년)에 일어난 재차의 왜란이며 정유년에 일어나 정유재란) 때 전주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해 완산부원군(完山府院君)에 추봉됐다.
추적(秋適)의 7세손 추익한(秋益漢, 1383~1457년, 호는 우천)은 1441년 문과(文科, 대과)에 급제하고 여러 벼슬을 거쳐 세종 때 한성부윤(漢城府尹, 2품 시장)을 지내고 향리로 돌아가 시서(詩書)로 자락(自樂)하다가, 어린 단종이 영월로 유배돼 오자 머루·다래 등을 따다 바치며 충성을 다했다. 1457년(세조3년)단종이 살해되자 그도 단종을 따라 죽자 세상 사람들은 당시 단종의 시신을 거둔 엄흥도(嚴興道)와 더불어 "살아생전 추충신(秋忠臣)이요, 죽어서는 엄충신(嚴忠臣)"이라고 일컬었다. 단종과 추충신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사당인 영월에 있는 영모전(永慕殿)에는 그의 충성을 기려 백마를 탄 단종의 혼백에게 머루를 진상하는 그림이 전해지고 있다. 영월군 중동면 녹전리를 넘어가는 험한 고갯길 '수라리재'에는 우천 추익한선생 신도비(愚川秋益漢先生神道碑)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