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우의 성씨 이야기] 금강유역 토성(土城 )·입향 성씨(入鄕姓氏) 추계추씨 2
추송웅, 추신수 등 추계추씨로 유명
추용만(秋鏞滿)과 추용소(秋鏞召) 형제는 합천에서 결사대를 조직하고 일본수비대를 공격하다 순국해 당대에 이름을 떨쳤다. 그 외 전북 익산에서 의병을 일으켜 윤현보와 함께 영암, 동해 등지에서 활약한 추기엽(秋琪燁)과 군자금 마련을 하다 체포돼 3년간 옥고를 치른 추교철(秋敎哲) 등이 뛰어났고, 독립애국단을 조직해 단장이 돼 상해 임시정부와 연락해 군자금 모금에 공헌한 독립유공자 추규영(秋圭暎)을 비롯해 많은 애국 열사들이 배출됐다. 추규영은 부산 동래고보 학생신분으로 독립만세시위를 계획하고, 독립선언서 500여 매와 다량의 태극기를 제작, 배포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 피체돼 옥고를 치렀으며, 해방 후에는 전남도지사(1953~1955년)를 지냈다. 그의 큰 아들 추경석은 국세청장과 건설부장관을 지내고 추계 추씨 대종회장을 역임했다. 정부에서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970년대의 대표적인 연극배우 추송웅(秋松雄, 1941~1985)이 추계 추씨다. 그는 경남 고성출신으로, 1963년 극단 ‘자유극장’에 입단해 ‘달걀’로 연극 무대에 데뷔한 이후 희극배우로서 명성을 쌓았다. 두 차례의 동아 연극상(東亞演劇賞) 최우수 남자주연상(1971년 어디서 무엇이 돼 만나랴, 1973년 세빌리아의 이발사)을 수상했으며, 1979년 모노드라마‘빨간 피터의 고백’을 발표해 최다 관중을 기록했다. 또 한국연극영화상 최우수 남자연극연기상을 받았다. 추송웅의 딸 추상미도 영화배우이자 영화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대전고와 한양대를 나와 유도국가대표를 지낸 추원호(秋元鎬)가 유명하다. 추원호는 1975년 유도 라이트급 한국대표에 선발돼 그해 10월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제9회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 출전했었다.
유도 추원호, 추미애 의원, 가수 추가열…
판사출신 국회의원으로 2010년 국회환경노동위원장으로 있는 추미애 의원은 2009년 ‘백봉신사상’을 수상했으며, 한양대 국제대학원 특임교수이기도 하다. 또한 홍익대를 나와 한양대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추재엽이 구청장으로 있는 서울 양천구청은 서울시가 25개 자치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11년 교통정책분야 평가에서 ‘최우수 구’에 선정돼 포상을 받기도 했다. 추가열도 추계 추씨다. 가수 추가열(추은열)은 1968년생으로 2002년 1집 앨범 ‘나 같은 건 없는 건가요’를 발표해 큰 인기를 얻었다. 2010년에는 제16회 남자포크송 부분 ‘대한민국연예 예술상’을 수상했다. 한국미술협회회원이며 건축사이기도 한 제당(濟堂) 추원호(秋願鎬)는 중앙대 건축과와 동대학원을 마치고 전국농업인 서예대전에서 3회에 걸쳐 특선을 한 서예가로 명성이 높다.
추세호는 대중음악작곡가로 유명하고, 추신수는 야구선수로 이름이 높다. 이밖에 한양대 금속디자인과 교수인 추원교, 전 부산고등학교 교사 추세민, 2012년 2월 충청남도 환경녹지국장에 임명된 추한철은 서천 출신으로 일본 오사카시립대에서 법학석사학위를 취득하였고, 홍성군 부군수, 행안부 전자정부본부 팀장과 정부혁신본부 팀장, 주일한국대사관 참사관을 거쳐 충청남도 투자통상실장을 역임하고, 2012년 2월 숭실대에서 공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밖에 추효현 금융감독원 노조위원장 등 많은 추씨 후예들이 가문을 빛내고 있다.
추씨는 1930년 조선총독부조사 당시 전국에 3523가구가 있었으며, 경남 통영, 거창 등지와 경북 달성·청도, 전남 완도·해남 등에 주로 거주했다. 1985년에는 가구 수 1만 439가구에, 4만 3552명으로 당시 274성 중 제65위였다. 한편 ‘문헌비고’에는 추적의 본관이 추계(양지의 다른 이름)로 돼 있으므로 본관을 추계 추씨로 하고 있으며 양지 추씨로 하는 사람도 있다. 추씨(秋氏)는 조선시대에 사마시(司馬試, 생원·진사를 뽑던 시험)에 3명의 급제자를 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