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우의 성씨 이야기] 금강유역 토성(土城 )·입향 성씨(入鄕姓氏) 신안주씨(新安朱氏) ②
근검·공평함으로 이름 떨쳤던 주열
2015-11-26 금강일보
주열(朱悅, 1287년, 본관은 능성, 자는 이화, 시호는 문절)은 고려 후기의 문신(文臣)이다. 은사과(恩賜科, 고려 시대에 제술과에서 정례적인 합격 이외에 임금의 은혜로 특별히 내리던 합격)에 등제해 현리(縣吏, 고을현의 공무원)를 지낸 주경여(朱慶餘)의 아들이다.
예부시랑(禮部侍郞, 정4품 차관)이 됐으나 당시의 권신 진천 임씨 임연(林衍)에게 거슬려 1269년(원종10년)에 해도(海島)에 유배됐다가 이듬해 임연이 죽자 동경유수(東京留守, 2품 지방장관)가 됐다.
예빈경(禮賓卿, 고려 시대 외국의 사신을 접대하고 잔치를 마련하는 일을 맡았던 예빈시에 속해 있는 종3품 벼슬), 간의대부(諫議大夫, 문하부에 소속돼 간쟁봉박을 관장하는 관직 인 정4품 차관급), 판소부(判少府, 고려 시대에 각종 공예품의 제작과 진귀한 물건을 보관하는 업무를 맡았던 소부시의 으뜸 벼슬로 품계는 정3품이며 판소부시사를 말함), 동궁시강학사(東宮侍講學士, 고려시대 동궁에 소속한 관직)를 역임, 원나라가 일본정벌을 준비할 때 경상도안무사(按撫使, 고려 시대의 외관직으로 현종 3년 12절도사를 폐지하면서 설치한 관직. 양주, 광주, 충주, 청주 등 지방 요지에 두었음)로 다녀와서 판비서성사(判秘書省事, 고려시대 비서성의 정3품 최고 관직)로 승진했으며, 충렬왕이 즉위하게 되자 그의 재명을 듣고 중용했다.
한림학사(翰林學士, 고려 시대 한림원의 정4품 관직으로 임금의 조서를 짓는 일을 함)에 제수하고 삼사사(三司使, 고려 시대에 삼사에 속한 정3품 벼슬로 충렬왕 때 좌사와 우사로 나뉨)로서 경상도계점사(慶尙道計點使, 고려 충렬왕 때부터 각 도에 파견한 지방관으로 호구. 토지 조사, 과세조정 및 부역 업무 등을 담당했음)로 나가 유망민을 초집했다.
판도판서(版圖判書, 판도사의 정3품 장관으로 조선 때는 정2품 호조판서), 부지밀직(副知密直, 고려 시대에 밀직사에 속한 종2품 벼슬), 전법판서(典法判書, 정3품 법무장관)에 나아갔으며 지도첨의부사(知都僉議府事, 고려 시대 백관에 관한 서무를 맡아보던 도첨의부의 종2품 관직)로 치사(致仕,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남)했다.
문장과 글씨에 능했고, 성품이 활달하였으며,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근검했고 어느 편에도 기울지 않는 공평함이 있었다고 한다.
◆국역(國譯) 고려사(高麗史)의 주열(朱悅) 기사
주열(朱悅)은 자가 이화(而和)이며 능성현(綾城縣, 전라남도 나주시) 사람이다. 부친 주경여(朱慶餘)는 현리(縣吏)로서 은사과(恩賜科, 고려 시대에 제술과에서 정례적인 합격 이외에 임금의 은혜로 특별히 내리던 합격자)에 급제했다. 주열은 고종 연간에 과거에 급제해 남원판관(南原判官, 5품 벼슬)으로 나갔다가 국학학록(國學學錄, 고려 시대 국자감의 정9품 관직으로 정원은 2인이었고 국자감 학생의 훈육 담담)으로 뽑혀 보임됐다.
거듭 승진해 감찰어사(監察御史, 고려 시대 사헌부의 종6품 관직이며 국초의 사헌대를 995년에 어사대로 고치면서 처음으로 설치했음)가 되었으며 나주(羅州, 전라남도 나주시), 정주(靜州, 평안남도 의주군)와 승천부(昇天府, 개성직할시 개풍군), 장흥부(長興府, 전라남도 장흥군)의 수령을 지냈는데, 그때마다 빼어난 공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