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人] 누리과정, 아이들만 바라봐야

윤성국 상무이사/편집국장

2016-01-28     윤성국 기자

정치인들이 입버릇처럼 되뇌는 말이 있다. 자신들의 판단과 결정은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었다고. 그러나 모든 판단과 결정은 결국 정치적, 정파적이고, 입신양명을 위한 개인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숨 쉬는 것조차 정치적이라고 폄하하겠는가.

그러나 정치가 국가와 국민에게 직결된 것들이고 보니 어쨌든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이었다는 가식적인 말조차 국민들은 수용하고, 그들의 판단과 결정을 존중한다. 선거구가 무효가 돼버려 선거구조차 사라져버린 초유의 상황에서 선거일을 앞두고 있는데도 당리당략과 개인적 유·불리를 따지며 선거구 획정조차 미루고 있는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인내심과 관대함이 그러하다.

그렇다고 해도 정치적 결정에 국민의 인내심 경시와 기만이 있어서는 안 된다. 민심 이반 등 상상 밖의 결과에 직면할 수 있다. 아동 정책일 경우에는 특히 그러하다. 많은 것을 인내하고, 이해하면서도 어린이들이 정치에 이용된다는 것은 허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와 시·도교육청 간 첨예하게 대립 중인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도 예외일 수는 없다. 정부는 예산을 시·도교육청에 충분히 줬는데도 딴 소리를 한다고 비난하고, 법적 책임마저 묻겠다고 경고했다. 이에 질세라 시·도교육감들은 누리과정에 사용할 예산이 적절히 교부되지 않아 예산이 부족하고, 부족한 교육 예산으로 인해 교육사업과 교육시설개선 사업에 눈을 돌릴 수가 없다며, 누리과정 예산 수립은 무리라고 항변한다.

이 대립은 외견상 재원을 누가 더 부담하느냐, 즉 돈 문제다. 재원만 넉넉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치적 판단이 함께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부 요청대로 예산을 세운 시·도교육청과 그렇지 않은 곳이 병존한다. 그러면 예산을 세운 나머지 시·도교육청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세우지 못한 곳보다 예산을 특별히 더 많이 받아 부족하지 않아서일까. 같은 기준으로 같이 받고 쓰고 있으니 당연히 아니다.

누리과정에 유치원 예산과 어린이집 예산 두 가지 중 하나를 세운 곳, 둘 다 세운 곳, 일부를 몇 개월만 임시 마련한 곳 등 다소 차이는 있으나 그 배경에는 교육감이 보수성향이냐 진보성향이냐, 지방의회가 여당이 주도하느냐 야당이 주도하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점이다.

이것은 결국 어린이 교육과 보육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아무리 미사여구를 동원해 불가피성을 설명하더라도 오해를 낳을 수 있다.

보육대란을 막기 위해 모두 정치적 판단을 접고, 어린이 교육과 보육이 정상 시행될 수 있도록 한 발 물러서야 한다. 정부 발표대로라면 올해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증가가 예상된다고 하니 시·도교육감과 지방의회는 정치적 판단을 접고, 우선 예산을 수립하고 나서 정부와 재원부담 논의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교육이 목적이라면 따질 것은 따져야 한다. 오로지 아이들을 위한 결정이었다면 국민은 절대 외면하지 않고, 힘을 보탤 것이다.

정부 또한 정치적 계산에서 비롯된 누리과정의 탄생 역사를 잘 알고 있으므로 이를 외면하지 말고, 교육자치단체장 시·도교육감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 확실한 재원 운영계획은 무심한 채 유권자의 표심에만 정신 팔려 5세에서 3~5세로 적용 대상을 무리하게 확대 시행했고, 법령을 개정해 어린이집 운영까지 모두 지방으로 떠넘긴 것 또한 사실이다.

예산 부족으로 교육환경이 악화되면 교육의 질적 저하는 불 보듯 뻔하며, 피해자는 어린이다. 열악한 그곳은 우리의 어린 학생들이 있는 학교와 유치원이며,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나온 아이들이 곧 들어설 교육 현장이다.

정부와 시·도교육청, 지방의회 모두 정치적, 정파적 판단을 뒤로 물려야 한다. 아이들만 바라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