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운의 우문우답] 우리동네 작은 음악회

논설위원

2016-07-27     김도운 기자

지인의 소개로 동네에서 진행되는 작은 음악회에 다녀온 적이 있다. 한 번 다녀온 후 관계자에게 명함을 건네고 왔더니 이후 매달 공연이 있을 때마다 연락이 온다. 그 정성을 무시할 수 없어 아들을 데리고 몇 개월 만에 공연장을 다시 찾았다. 수개월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는 분위기이다. 사실 공연장이라는 말도 무색하다. 음악회를 주최하는 한 의사의 개인병원 로비 한쪽 면에 작은 무대를 만들고 나머지 공간에 50개 남짓의 의자를 배치해 객석을 만들었다. 음향이나 조명도 별스럽지 않다.

출연자들의 프로필을 보니 말 그대로 동네에 사는 이웃들이다. 그러니 출연자들의 옷차림도 무대의상이 따로 없다. 평소 잘 매지 않던 나비넥타이를 매는 정도이다. 일부 여성은 무대용 드레스를 갖춰 입기도 하지만 요란스럽지는 않다. 무대에 오르는 가수, 연주자, 시낭송가도 생활인들이다. 그러니 노래 솜씨, 연주 솜씨가 빼어나지 않고 실수도 자주 한다. 모든 것이 어줍다. 그러나 무대에 오르는 사람도, 객석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사람도 그렇게 진지할 수가 없다. 공연자도 관람객도 최상의 공연 매너를 보이며 음악회가 끝날 때까지 모두 즐거워 어쩔 줄 모른다.

공연자는 무대에 올라 혼을 다해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한다. 관람객들은 몰입해서 음악을 감상하고 노래와 연주가 끝나면 공연자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안긴다. 공연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공유하기도 한다. 1시간 반 남짓 공연을 마치고 나서 인근 식당으로 가서 가벼운 반주를 곁들여 함께 저녁 식사를 한다. 식사비용은 참석자들이 각자 부담한다. 저녁 식사를 함께 하는 자리도 시종 웃음이 끊이지 않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공연자들에게 격려의 덕담을 건네는 것은 기본이다. 행복이 가득한 시간이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몇 장의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다. 많은 네트워크 친구들이 “그런 동네에 살아 행복하겠다” “매번 가는데 이번엔 못 가서 아쉽다” “부럽다. 나도 가보고 싶다” “음악회를 주최한 의사가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있다” 등등의 반응을 보였다. 댓글을 달지는 않았지만 ‘좋아요’ ‘멋져요’ ‘기뻐요’ 등의 느낌표시가 수도 없이 이어졌다. 한마디로 좋다는 반응이다. 무심코 사연을 올렸지만 반응은 의외로 뜨거웠다. 공연 내용을 모두 전할 수는 없었지만 분위기는 제대로 전달이 된 모양이다.

동네 사람들이 주인공인 어설픈 공연을 잠시 보고 왔을 뿐인데 그날 내내 감동이 밀려오고 마음이 따듯했다. 그날 음악회에 참석한 모든 이들이 나와 같은 기분을 느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관람객들은 공연을 지켜보는 동안 행복했을 것이지만 무대에 오른 참가자들은 공연을 준비하는 내내 행복했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다수의 관람객들은 ‘나도 저렇게 무대에 올라 노래도 부르고 악기도 연주하고 싶다’는 부러움을 느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나도 꾸준히 연습하면 저 정도 실력에 이를 수 있을 거야’라는 자신감도 얻었을 것이다. 참석자 모두를 행복하게 만든 공연이었다.

세계인들에게 한국은 일중독(Workaholic)에 빠져 사는 나라로 소문이 났다. 한국은 즐길 줄을 모르고 그저 일만 하는 나라라고 국제사회에 소문이 났다. 실제로 한국인들은 인생을 윤기 나게 하는 취미활동이나 사교활동에 무관심하다. 선진국의 경우, 악기 하나는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아야 교양인이고 중산층으로 인정받는다고 한다. 대한민국 중산층임을 자임하는 이들 가운데 악기 하나를 다룰 줄 아는 인구가 몇이나 될까. 취미활동으로 인생의 참맛과 활력을 찾는 이는 몇이나 될까. 우리 동네 작은 음악회를 다녀온 후 진정한 중산층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10년 넘게 꽁꽁 싸두었던 기타를 꺼내 조율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