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人] 주객전도를 바로잡아야
2011-04-21 윤성국 기자
뒤에서 차를 들이받은 택시기사가 내리자마자 앞차의 여성 운전자에게 소리를 지르며, 기선을 제압하려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 앞차에게 잘못을 저지른 뒤차가 잘못을 전가해 위기를 모면해보려는 얄팍한 대응이다. 이처럼 순리를 벗어나 입장이 뒤바뀐 이런 낯선 현상을 우리는 주객전도(主客顚倒) 또는 본말(本末)전도라고 한다. 전도된 상황을 인식한 당사자는 순간 당황스럽더라도 당장의 시정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상황에서는 더러 이러한 불합리한 주객전도를 눈치 채지 못하거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냥 지나칠 수도 있다. 문제는 우리 사회의 너무나 많은 곳이 그렇게 지나치고 있으며, 정말 그래서는 안 되는 것들조차도 당연한 것으로 인정해버린다는 것이다. 특히 오랜 기간의 관습화, 관례화가 남긴 결과는 정도가 더욱 심해, 시정을 주문하는 외부로부터의 강력한 충격을 접하기 전에는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꿋꿋이 그릇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그래서 사회는 주(主)와 객(客)이 전도됐음을 확인하는 순간, 이러한 모순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도록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문제의식도 없는데다 적극적인 자세마저 없다면 뒤차에게 받힌 앞차의 운전자처럼 아무런 피해보상을 받지 못하거나 아예 뒤차 수리비까지 덤터기를 쓰는 유무형의 피해를 안게 된다. 왜곡된 구조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사회가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며, 이를 위해 솔선수범하는 사회만이 모순의 사회를 바로잡을 수 있다. 아주 자연스러운 것들도 냉철한 시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 오랫동안 관례처럼 굳어져 잘 포장된 것들은 적극적인 의지로 가늠해보지 않으면 절대 드러나지 않는다.최근 한복이 국내 유수의 호텔에서 쫓겨난 사건은 그 의미가 크다. 손님이 식당을 가려서 가는 것이지 식당이 손님을 가려서 받는 다는 것은 여간해서는 감수하기 힘든 본말전도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착용을 장려하고, 후대에 까지 두고두고 계승시켜야 할 우리 전통의상 한복이 말도 되지 않는 이런 저런 이유 앞에 호텔에 굴복당한 사건이고 보니 많은 이들의 공분(公憤)을 자아냈다. 자국의 전통의상을 문전박대한 몰지각한 행동은 해외 유수 언론에까지 보도됐고, 대한민국과 한복은 외국에까지 체면을 구기게 됐다.문전박대를 당한 한복 디자이너의 용기 있는 글을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다면 이 호텔은 그간의 관례처럼 지속해 한복을 박대했을 것이며, 그렇게 한복은 유명호텔 뷔페에서는 피해야 할 의상쯤으로 전락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키고 가꾸어야 할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면서도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한복으로서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국민이 주인인 공공기관에서도 본말전도를 확인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고압적인 자세 대신 섬기는 자세로 웃음 짓는 민원실의 친절 공무원을 쉬 접할 수 있지만 아직은 많은 아쉬움을 남기는 분야 중의 하나이다.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한 민원인들이 찾는 공공기관일수록 두드러진다. 웃음은 찾아보기 힘들며, 친절은 딴 세상 이야기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일수록 자격지심으로 위축돼있어 창구 공무원의 따뜻한 말 한마디와 밝은 미소가 그들에게는 큰 힘이 될 수도 있으나 경직된 얼굴은 절대 미소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들이 누구를 위한 존재인가를 망각한 듯, 마치 깔보듯. 겉으로는 상생이니 어쩌니 하면서도 뒤로는 협력업체나 영세한 가맹점 등칠 생각만 하는 대기업의 횡포도 그렇고, 주객전도는 당연히 여기고 있는 수많은 것들에 아닌 듯 숨어 있다. 언론을 포함해 좀 더 많은 이 땅의 주인들이 두 눈을 부릅떠야 한다. 전도된 주객을 바로잡으려는 용기와 노력이 충만할 때 세상은 건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