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달의 풍수지리〉계룡산 시대의 의미와 우리의 역할⑵
2017-05-18 김현호 기자
풍수지리적 관점에서 계룡산은 개성의 송악산과 한양의 북한산과 함께 국가를 이끌어 갈 3대 명산에 속한다. 송악산과 북한산은 산세가 위에서 아래로 권력이 내려오는 형세로 왕조의 시대 및 현재의 제왕적 대통령의 시기에 적합한 장소다. 이에 반해 계룡산의 지세는 권력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와 백성이 주인인 형세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고려 왕조의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주창한 이성계는 국호를 정하기도 전에 새로운 도읍의 터를 물색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듯이 새롭게 시작하기 위함이었다. 당시 최고의 풍수사인 권중화가 명을 받고 전국을 살핀 결과 계룡산 아래 신도안을 지목했고 가까운 충남 금산의 만인산에 이성계의 태실도 안장할 것을 건의했다. 이 태조는 흔쾌이 승낙하고 주요 관료들과 함께 계룡산을 몇 차례 현지답사를 했다. 함께 온 왕사인 무학대사와 정도전 등이 개성의 송악산보다 훌륭하다고 해 즉시 왕궁 조성에 박차를 가했다. 만인산 아래 이 태조의 태실도 안장했다. 왕궁터를 조성하기 위해 대궐과 종로터의 기초인 주춧돌 준비와 수로 작업을 시작, 두계천을 확장하고 제방을 쌓는 등 도읍을 옮기기 위한 공사가 진행됐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의 시작은 순탄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