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무전여행, 없는 자들의 아름다운 도전
하나고등학교 하우정
무전여행, 말 그대로 돈 없이 떠나는 여행을 말합니다. 돈 한 푼 없이 그저 배낭 가득 젊음과 열정만을 담고서 떠나는 것이지요. 그래서 여행자는 여정 중,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면서 다니는 번개여행을 경험하기도 하는 반면, 동시에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인연을 쌓는 귀중한 경험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요즘 청년들은 생각보다 이러한 무전여행에 대해 부정적이었습니다. 1년 전 한 매체에서 진행된 무전여행에 대한 대학생 인식 조사 설문을 참고하면, 무전여행에 긍정적인 사람은 100명 중 69명 꼴, 나머지 31명은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쳤습니다. 부정적이라고 답한 이들은 무전여행의 무모함과 위험함, 힘듦 등을 이유로 뽑았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살기 힘든 시대에 돈 없고 배고픈 여행객을 챙길 여력이 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행여 민폐 여행으로 끝나지 않을까’하는 이유가 압도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오늘도 주위 사람들의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빈손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땡전 한 푼 없이 세상을 달리는 그들의 도전이 결코 민폐가 아닌 아름다운 도전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아가보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무전여행은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 나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을 바꿔주는 소중한 깨달음의 여정입니다. 송동우 학생(신문방송학부 3)은 여행을 떠나기 전 무전여행에 대해 그리 낙관적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요즘같이 각박한 세상에 돈 없는 여행객을 도와줄지가 의문이었고 도움을 받는다 해도 즐거움보다는 불편함이 클 것만 같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행으로 인해 그 생각을 송두리째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여행 중 만난 ‘사람들’ 덕분이었습니다. 선뜻 잠자리를 내어준 시골의 마을회관, 조촐하지만 정이 가득한 밥상을 내어 주신 할머니, 다소 먼 시장까지 운전해주시고 내리는 길에 손 가득 귤을 쥐어 주신 아저씨 등. 세상은 그가 여겨왔던 만큼 각박하고 삭막하지만은 안았던 것입니다. 물론 일부에서는 이러한 깨달음은 도움을 받는 사람, 즉 여행자만의 경험이기에 깨달음의 여부와 상관없이 무전여행 여전히 그 자체로 민폐 행위라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전여행은 주는 사람 또한 세상의 따뜻함을 느끼게 해줍니다.
실제로 한 대학생이 전주에서의 히치하이킹 중 만난 아주머니께서는 학생의 도전을 도와주며 도리어 온정을 얻으셨다며 감사함을 전했다고 합니다. ‘아직 세상이 삭막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사람들이 학생의 프로젝트에 동참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덕분에 난 오늘 나에게도 세상의 따뜻함이 남아있음을 느꼈어요’라고. 시원한 냇물과 정자가 있고 사방은 산에 둘러싸여 있는 저의 할머니 댁에도 휴가철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며 도움을 청해옵니다. 서울 촌놈인 저는 가끔 할머니 댁을 찾아가 그러한 광경을 목격할 때마다 답답함과 왠지 모를 억울함까지 느끼곤 했습니다. 밭에 물 뿌리는 일을 해주고는 밤새 놀 바비큐 장소를 얻기도 했고, 오이와 호박 몇 개 따주고는 수십개의 고추를 가져가곤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저의 분함에는 일절 아랑곳하지 않으신 채, 할머니께서는 늘 그들을 정말 진심으로 반기고 항상 더 큰 도움을 주고자 하셨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일년 대부분을 적적히 지내시는 할머니께 잠깐 잠깐 찾아오는 그들은 젊음과 열정, 세상의 활기를 느끼게 해주는 단비 같은 존재였던 것입니다. 할머니에게 그들은 시골 인심을 이용하려는 젊은이이기보다는 늙은 자신의 도움을 간절히 원하는 실로 반가운 존재였던 것입니다.
물론, 무전여행의 기본 의의와 본질을 망각한 채 무작정 떠난 여행은 민폐에 그칠 것입니다. 그러나 무전여행의 본질을 잊지 않고 일손이 부족한 곳을 찾아가 밭일을 돕거나, 바쁜 시간 이후 넘쳐나는 식당일을 도와가며 온정을 구하는 자들까지 민폐라고 무작정 몰아붙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나아가 최근에는 점차 많은 젊은이들이 단지 개인의 경험이나 안정을 위해서가 아닌, 사회 문제에 대한 염려의 마음으로 국토순례를 하고 있습니다. 수입개방으로 인해 고통 당하는 농민들의 아픈 마음을 담은 구호를 외치는 청년, 통일을 향한 염원을 태극기와 목에 건 작은 팜플렛을 통해 드러내고 있는 청년 등 의미 있는 캠페인 형식의 무전여행자가 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무(無)’한 여행이라 할지라도, 무작정 짐부터 싸는 무전여행은 자칫 사고를 부를 수도 있으며 말 그대로 소득 없는 ‘민폐 여행’에서 그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여행길에 오르기 전, 자신의 재주 하나 챙겨 들고 떠나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민폐가 되지 않기 위해 어디서든 써먹을 만한 재능 하나쯤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양심과 추억 모두 잡는 최고의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고등학교 하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