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카 가득채워도 5천원' 뙤약볕 아래 폐지 줍는 노인
무릎아파 리어카도 버거워…끼니는 겨우 컵라면으로
지난 4월 ‘재활용 쓰레기 대란’으로 폐지 값이 폭락한 가운데 무더위까지 엄습해 어렵사리 생활하는 폐지수거 노인들의 신음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흐른 지난 19일, 대전 중구 한 주택가 골목에서 만난 김 모 할아버지(80)는 폭염에도 불구하고 두꺼운 장갑을 낀 채 폐지를 줍고 있었다. 그늘도 없는 인도 한복판에서 허리를 굽혀 힘겹게 모은 폐지를 정리하는 모습이 꽤 지쳐보였다. 김 할아버지는 “폐지 값이 1kg에 50원으로 줄었지. 이젠 하루 종일 돌아다녀서 리어카 가득 채워봐야 5천원이 고작이야”라고 한숨 섞어 말했다.
이날 김 할아버지는 집에서 새벽 5시부터 나와 동네를 돌며 폐지를 주웠지만 리어카의 절반 정도밖에 채우지 못했다. 지난해 사고로 다리를 다친 후 거동이 불편해지자 폐지 줍는 데 한계가 온 거다. 다리가 불편한지 계속해서 리어카 손잡이에 한쪽 몸을 기대던 할아버지는 “새벽 4시부터 돌아다녀야 그나마 있는 폐지도 찾을 수 있는데 이젠 다리도 시원치 않고 너무 아파서 5시나 돼야 리어카 끌고 나와”라며 “예전만큼 모으기는 어렵지...”라고 고개를 떨군 채 말끝을 흐렸다.
푹푹 찌는 날씨에 리어카를 채우는 일도 힘겨운데 끼니까지 제대로 때울 수 없는 현실은 폐지 줍는 노인들을 더 서글프게 한다. 점심식사는 식사라는 말보다 끼니를 때운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단출하다. 김 할아버지는 “요즘 같은 세상에 밥 한 그릇에 5000원인데 우리 같은 노인들은 하루 버는 돈이 4000~5000원이야. 대부분 그냥 컵라면으로 버텨”라고 쓸씁하게 말했다.
이심전심이랄까. 폐지 줍는 노인들의 애환을 가장 잘 아는 건 고물상이다. 이날 찾은 중구의 한 고물상에선 노인들의 근황을 들을 수 있었다. 고물상 주인 A(60) 씨는 “이틀간 폐지를 가져온 노인은 5명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한 노인은 폐지 30㎏을 가져와 고작 1500원을 받아갔다. 자주 오는 분들도 날씨도 덥고 돈이 안 되니까 폐지 모으는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A 씨에 따르면 지난해까지만 1㎏당 180원이던 폐지값이 이달들어 50원으로 줄어들었다. 1/3토막 난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고물상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그는 “올해 재활용 쓰레기 대란으로 고물 가격이 형편없어 운임도 안 나온다. 재고는 쌓이는데 팔리지 않으니 한계가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글·사진=송승기·김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