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진 사람 도와줬다가 진료비 2500만원 '폭탄'

건강보험혜택 자격상실 주민등록말소자
본인이 전체 의료비 부담 '의료사각' 방치
병원서도 홀대 ··· 환자 떠넘기기 급급

2011-11-29     서이석

최근 A 씨 가족은 뇌출혈 증세로 쓰러진 지인 B 씨를 대전의 모 종합병원으로 옮겼다가 그야말로 온집안이 발칵 뒤집어지는 봉변을 당했다.

병원 측은 “B 씨의 생명이 위독하다”며 당장 수술에 들어가야 한다고 밝혔고, 보호자를 찾던 병원은 A 씨에게 수술동의서와 보증인 서명을 요구했다.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급한 마음에 병원 요구대로 따른 A 씨.
B 씨의 가족을 수소문하려 했지만 혼자 살던 B 씨와 안면만 터놓은 터라 가족 관계를 알리도 만무했다.

A 씨 가족의 시련은 여기서부터 불거졌다.
병원 원무과가 수술 후 A 씨에게 청구한 각종 비용은 무려 2500만 원에 달했다. B 씨는 주민등록말소자로 건강보험료도 체납돼 의료보험 혜택자격을 상실한 상태였다.

A 씨는 “수술 후에도 호전되지 않아 깨어나지 못하는 환자에게 가족을 물어볼 수도 없는 것 아니냐”며 “선의의 뜻이 결국 한두푼도 아니고 수천만 원의 병원비까지 책임지라고 하는데 이게 말이 되느냐”고 분개했다.

주민등록말소자들이 사회의 방치속에 의료사각지대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경제적 이유와 민·형사 기소 사건 등으로 인해 자의반 타의반 주민등록이 말소된 사람들이 위독한 상황에서도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처지에 놓여있는 것이다.

◆신용불량자, 기소중지자, 노숙자 등에게 수천만 원의 ‘병원빚’
엄밀히 따져 주민등록말소자라고 해서 병원 진료를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지역 의료계 등에 따르면 지역 또는 직장의료보험 대상에서 빠진 사람들은 일반환자로 진료를 받을 수 있다.

다만 본인 비용부담 측면에선 그야말로 천양지차다.
정부로부터 치료비 지원 등을 받는 지역 또는 직장 의료보험가입자들과 달리 주민등록말소자들은 본인이 전체 의료비를 모두 부담해야 한다.

뇌출혈 수술의 경우 보험가입자는 몇 백만 원 선에서 해결되나 주민등록말소자들은 기본이 몇 천만 원이다. 이들 대부분이 신용불량자, 기소중지자, 노숙자 등인 점을 감안할 때 중증질환으로 앓기라도 한다면 천문학적인 병원비가 다시 빚으로 가중될 수밖에 없다. 가족 중 누군가가 이들의 빚을 분담해야 하는 2차, 3차 족쇄도 예상된다. 또 가족이라도 수천만 원대의 병원 비용에 선뜻 나서기란 쉽지 않다.

◆병원도 떠넘기기 급급…응급 환자를 모른채 하란 말?
일선 병원도 주민등록말소자들을 홀대하긴 마찬가지다. 돈이 안 되고 골치만 아프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급한불은 끄자는 식으로 수술대에 올렸다가 비용 책임 문제가 불거지면서 병원 경영진으로부터 곤욕을 치르는 의료진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의료진들은 고비용 수술을 요하는 노숙자 등이 병원을 찾을 경우 아예 환자를 설득해 다른 병원으로 보내는 ‘환자 떠넘기기’가 종종 발생한다는 후문이다. 선의로 응급환자를 병원으로 옮겼다가 천문학적인 병원비를 떠안게 되는 보증인 문제로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A 씨는 “당장 수술해야 한다며 보증인에 서명하라고 하는데 안할 사람이 누가 있겠냐”며 “병원은 보증인 서명을 들어 책임 전가에 급급한게 현실인데 결국 옆에서 사람이 숨이 넘어가더라도 모른척 하라는 것 아니냐”고 개탄했다.

이에 대해 대전의 모 병원 관계자는 “병원에서 보증인은 일반 은행대출시 보증인과 같은 것”이라며 “영리성을 추구하는 병원 입장에선 보증인 문제는 불가피한 경우가 많다. 어쩔수 없는 상황”라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 때문에 정부는 지난해 10월부터 주민등록말소자의 마지막 주소지를 행정상 관리주소로 하는 ‘일괄 거주불명 등록자’ 제도를 도입, 기초생활보장 및 건강보험 등 사회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실제 수혜자는 극히 미미해 사문화 논란이 제기되는 등 실효성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