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人] 무역 1조 달러와 정치

2011-12-09     이영호
이영호 편집국장

1948년 대한민국의 수출은 1900만 달러였다. 당시에는 가발이나, 철광석, 우뭇가사리로 만든 한천, 오징어 등을 수출하던 나라였다. 아프리카 국가들보다 무역규모가 적은 100위권이었다. 1964년 박정희 전 대통령은 당시 상공부 장관에게 ‘모든 것을 지원할 테니 연말까지 1억 달러 수출을 달성하라’고 지시했고 그해 11월 30일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다.

이날이 무역의 날이다. 이후에도 대한민국은 1977년 수출 100억 달러, 95년 1000억 달러, 2006년 3000억 달러 수출을 각각 달성했다. 이어 지난 5일 수출 5153억 달러, 수입 4855억 달러를 기록했다. 대한민국이 세계 아홉 번째로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하는 순간 이었다. 근로자, 기업인, 정부 관계자들의 피나는 노력의 결실이다. 대한민국이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한지 47년 만에 무역 1조 달러 시대를 열었다.

그늘도 없지 않다. 과거에는 수출 증가로 인한 낙수효과로 고용도 늘어나고 중소기업도 동반성장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고용 증가율이 크게 둔화됐고 대기업 위주로 수출이 늘어나면서 중소기업들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무역 강대국반열에 올라섰다.

그런데 정치는 어떤가.
추락의 끝도 짐작하기 어렵다. 최루탄 국회가 그러하고 선거관리위원회 사이버 테러가 그렇다. 소화기와 해머, 공중부양, 전기톱이 등장하더니 이번에는 최루탄까지…. 공사장이나 시위현장의 모습이 아니다. 입법을 담당하고 있는 국회의 자화상이다. 김두환 의원이 민의의 전당인 국회의사당에 인분을 투척한 이후 45년 만에 또다시 국회에 테러가 가해진 것이다. 어떠한 명분으로도 국회에서의 폭력은 용납될 수 없다. 민주주의의 요체는 대화와 타협이며 다수결의 원칙이라는데 이견이 별로 없을 것이다. 다수결의 원칙을 앞세운 다수당의 횡포가 국민을 해롭게 한다고 판단된다면 최선을 다해 견제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폭력으로 힘으로 테러로 다수당의 전횡을 저지하려 한다면 이 또한 의회주의를 부정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따라서 한나라당의 한·미 FTA비준안 단독 강행처리에 항의하며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최루탄을 터뜨리고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폭거일 뿐이다. 물론 한나라당이 강행처리로 빌미를 제공했지만 그렇다고해도 최루탄과 같은 폭력은 절대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한나라당 최구식 국회의원실의 비서가 서울시장 보궐 선거일에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를 공격해 마비시킨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홈페이지를 공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치권은 물론 온 국민이 충격에 빠졌다. 한나라당과 최 의원이 즉각 꼬리자르기에 나섰지만 의혹은 증폭돼 야권은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조직적 개입이 없었고 27세의 9급 비서 단독범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그런데 국회의장 전 비서관이 용의자와 전날 밤 술자리를 함께한 사실과 선관위 공격직후 통화한 사실까지 드러나는 등 의혹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사태가 파국으로 치닫자 한나라당 일부 최고위원이 사퇴했고 당 해체와 재창당 수순에 들어갔다.

한나라당은 18대국회에서 다수당으로서의 수적 우위를 앞세워 날치기 일삼았고, 민주당 등 야당은 테러와 폭력, 점거와 농성으로 맞서 의회민주주의는 실종된 지 오래다. 일련의 사태는 정치 불신을 조장하고 국회와 정치권의 신뢰를 붕괴시키는 것은 물론 사회불안 요인으로 작용해 경제성장까지 저해할 수 있다. 더 이상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폭력과 테러로 얼룩져 국제사회의 웃음거리가 되는 일은 없어야할 것이다. 이를 위해 2년째 잠자고 있는 ‘국회폭력 방지법’과 ‘국회선진화방안’도 조속히 처리해야할 것이다. 무역 1조 달러 클럽 국가에 걸 맞는 정치권의 처신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