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충청의 문화유산'] (15) 5대를 이어온 참판댁의 술 ‘아산 연엽주’
왕의 건강 위해 진상된 약주 연잎 주재료로 감칠맛 일품 제대로 전수된 것, 아산 유일 예의 지키는 이에게만 판매
조선 철종, 3년간 전국적인 가뭄으로 인해 백성들이 굶주린다는 상소문이 전국각지에서 빗발치자 철종은 암행어사를 파견해 사실 파악에 나섰다. 상소문이 사실임이 확인되자 철종은 금주령을 내리고 호의호식을 멀리했다. 종묘사직에 올릴 제주(祭酒)마저 금했지만 당시 ‘술은 건강에 좋다’라는 인식이 있었기에 철종의 건강을 걱정한 신하들은 음료 같은 저도주(低度酒)을 진상했다. 그 약주(藥酒)가 200년 역사를 이어온 연엽주다.
1809년 여성실학자 빙허각 이씨가 작성한 ‘규합총서’에는 연잎을 주재료로 만든 전통주 연엽주(蓮葉酒) 제조법이 상세히 적혀 있다. 고종의 건강이 악화되자 신하들이 진상했던 술로도 널리 알려져있다.
‘규합총서’에 의한 연엽주 제조 방법은 다음과 같다.
좋은 쌀 한말을 여러 번 씻어 물에 담가 하룻밤 지낸 뒤 찌고, 좋은 물 두 병을 식힌 다음 밥과 한데 섞는다. 그 후 좋은 누룩 일곱 홉을 곱게 가루로 만들어놓고, 먼저 연잎을 장독 속에 편다. 그 위에 밥을 넣고 누룩을 뿌려 떡 안치듯이 켜켜로 만들어 단단히 봉하여 볕이 안 드는 찬 데 두어 익힌다.
연잎으로 향을 낸 연엽주는 알코올 도수가 14%의 저도주로 쌉쌀하면서도 감칠맛이 일품인 술이다. 특히 남성의 양기와 여성의 음기를 북돋아 주고 장기간 복용할 경우 피를 맑게 하며 혈관을 넓게 해주는 효능이 있다. 여성에게는 산후 하혈을 방지해 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연엽주는 ‘규합총서’ 뿐만 아니라 조선 중엽 이후 문헌인 ‘산림경제’, ‘양주방’등에 기록돼있는 유서 깊은 전통주다. 여러 서적에 기록돼있지만 실제로 전수된 연엽주는 예안 이 씨 이원집(1829~1879)이 쓴 ‘치농(治農)’에 나온 ‘아산 연엽주’뿐이다.
충남 아산 외암리의 외암 민속마을은 사람이 실제 거주하고 있는 한국에 몇 없는 유서깊은 민속마을 중 하나다. 이 마을에서 가장 큰 집인 ‘참판댁’에서 200년 전통을 이어온 ‘아산 연엽주’를 만날 수 있다.
‘아산 연엽주’는 외암리 예안 이 씨 가문에서 5대째 이어온 제주(祭酒)다. 충남 무형문화재 제 11호 최황규 선생과 남편인 이득 씨는 그의 5대조 이원집의 제조방법을 따라 연엽주를 빚고 있다. 연엽주의 주 재료인 연잎을 직접 농사 짖고 물도 함부로 쓰지 않고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방법으로 취수한다고 한다. 술의 양 또한 한 독 분량만 만들고 절반을 쓰면 다시 담그며 그 품질을 지키고 있다.
이렇게 정성을 들여 만든 술이기에 아무에게나 판매하지 않고 직접 발걸음으로 찾아온 손님에게만 소량 판매를 한다고 한다. 또한 술에 취하거나 슬리퍼를 신고 오는 등 예의를 지키지 않는 이에게는 판매하지 않는다고 한다.
만드는 사람이 정성과 예(禮)를 다하는 만큼 마시는 쪽 역시 몸가짐과 마음가짐이 단정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선비정신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는 것이 부럽고 자랑스러울 뿐이다.
한편, 외암민속마을은 충남 아산 시내에서 남쪽으로 8km 떨어진 설화산에 자리하고 있으며 중요민속자료 제236호다. 500년 전 강 씨와 목 씨가 정착한 마을이었으나 조선 선조 때 예산 이 씨가 정착하며 이 씨 정착촌이 됐고 많은 인재를 배출한 양반촌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김경훈 인턴기자 admin@gg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