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열의 힐링여행 2] 66.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독립기념탑 모나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2021-05-06     금강일보
메르데카 컵 조형물
자바전쟁 디뽀네고 왕자 기마상
메르데카광장 입구
독립기념관 가루다
전망대에서 본 자카르타 시내
전망대에서 본 메르데카광장
독립기념탑 모나스 전경

[금강일보]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Jakarta)는 1527년 자바섬 북서쪽 해안인 반탐(Banten)에서 이슬람화한 부족이 점령한 이후 자야카르타(Jayakarta)라고 불렀다. 자야카르타란 '승리의 도시'라는 의미라고 한다. 16세기 초 포르투갈, 영국, 네덜란드 등 서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이 아시아에서 식민지 획득과 향료무역의 독점을 노리고 격렬한 싸움을 벌인 끝에 네덜란드가 1602년 자야카르타를 점령하여 동인도회사를 설치하고 동방무역의 거점으로 삼았다. 1619년에는 자야카르타를 바타비아(Batavia)라고 고쳐 부르더니, 식민무역 이외에 동인도제도를 식민지로 삼아 350여 년 동안 지배했다.(자세히는 2021. 4. 14. 자카르타 참조)

인도네시아는 2차대전 때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지배를 받았으나, 2차대전이 끝난 뒤에도 다시 네덜란드와 오랜 격전 끝에 1949년 말에야 독립했다. 1954년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대통령은 수도 자카르타에 파리 에펠탑처럼 독립을 상징하는 높은 기념물을 세우려고 수 차에 걸친 공모 끝에 1961년에야 137m 높이의 독립기념탑(Monas)을 세웠다. 그리고 이곳을 중심으로 미국의 워싱턴광장을 본뜬 독립광장(Merdeka Square)을 조성했는데, 메르데카광장은 천안문 광장의 5배이고, 파리 콩코드 광장(Place de la Concorde)의 12배나 되는 75㏊로서 세계 최대의 광장이다. 이곳에서는 국가적인 행사가 열릴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휴식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2002년 메르데카광장은 동서남북 사방에서 출입할 수 있는 출입문과 광장 전체를 둘러싸는 울타리를 만들었다. 울타리는 일제에 항거한 인도네시아인들의 항거를 상징하여 대나무 죽창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메르데카광장은 독립기념탑 모나스를 중심으로 4개의 대각선이 교차하는데, 광장 북쪽에 앞발을 높이 치켜세운 청동 기마상은 네덜란드의 식민 지배에 항거하여 자바전쟁(1825~1830) 때 중부 자바 족자카르타 왕국의 디뽀네고르 왕자가 싸우는 모습이다. 인도네시아는 우리가 해방된 1945년 8월 15일보다 이틀 뒤인 8월 17일인데, 메르데카광장 입구에서 독립기념탑까지 거리가 45m이고, 기념탑 하단의 가로 세로의 길이가 각각 45m인 것은 인도네시아사 독립된 1945년을 상징한다. 또, 탑 상단부와 하단부의 모서리가 8개인 것은 해방된 8월을 상징하며, 하단에서 상단으로 향하는 17개 계단과 꼭대기 횃불의 길이 17m는 17일을 상징한다.

메르데카광장 중앙에 우뚝 솟은 모나스의 꼭대기에는 정열적인 투쟁을 상징하는 불꽃 모양의 조형물이 빛나고 있는데, 불꽃은 순금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또, 널찍한 탑의 기단부로부터 길게 뻗은 탑신은 남녀의 성기를 뜻하는 링거와 요니가 결합한 음양의 조화를 고려한 설계라고 한다. 모나스의 지하 계단으로 내려가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전망대까지 올라가서 자카르타 시내를 전망할 수 있고, 지하통로를 걸어서 각종 전시물을 관람할 수 있는 독립기념관(Monumen Nasional)이 있다. 독립기념일인 1961년 8월 17일에 착공하여 1972년 5월 18일 준공된 독립기념관은 온 국민의 협동과 단결을 상징하여 건축비는 모두 국민의 성금으로 충당했으며, 입장료는 1만 루피아(Rupia)이다. 인도네시아 환율(IDR)은 1$: 1만 루피아이고, 원화와의 환율은 100루피아: 10원이었다가 최근 인플레이션으로 100 : 7.73원으로 떨어져서 770원 정도이다.

가로세로 80m, 높이 8m의 지하전시관인 독립기념관은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우리네 천안 독립기념관이 찾아가는 발길을 멀게 하는 것과 달리 시내에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탈리아도 로마 중심지인 ‘베네치아거리’에서 로마시청이 있는 캄피돌리노 광장(Pizza del Campidoglio)로 올라가는 비탈길을 다듬어서 통일 이탈리아 초대 황제 에마뉘엘 2세 기념관과 에마뉘엘 청동 기마상을 세웠고, 헝가리도 수도 부다페스트 한가운데에 영웅광장을 조성하여 독립 영웅들의 기마상을 세운 것은 시민의 접근성이 좋은 훌륭한 발상이라고 생각된다.

독립기념물 전시관에는 독수리 가루다(Garuda)가 큼지막하게 걸려 있는데, 가루다는 시공을 초월하여 날아다니는 상상의 신 비슈누(Wisinu)를 상징한다. 가루다의 방패는 국가 방어를 상징하고, 목 깃털 45개는 독립한 1945년을, 몸통 깃털 8개는 독립한 8월을, 양쪽 날개의 깃털 17개는 17일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가루다는 인도네시아의 국가문장으로서 정부 기관 곳곳의 상징물일 뿐만 아니라 국영 가루다항공사의 심볼이기도 하다.

전해오는 이야기는 오랜 옛날 현자(賢者) 카시아파에게 아름다운 부인 카드루와 비나타가 있었는데, 카시아파는 두 부인에게 자식을 낳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자 카드루는 1000마리의 훌륭한 뱀을 낳기를 원했고, 비나타는 카드루가 낳은 자식들보다 힘과 용맹이 뛰어난 자식을 원했다. 그 후 카드루는 1000개의 알을 낳고, 비나타는 2개의 알을 낳았는데, 500년이 지난 뒤 카드루가 낳은 알에서는 1000마리의 뱀이 나왔지만 비나타의 알은 그대로였다. 비나타가 궁금해하며 두 알 중 하나를 깨보니, 알 속에는 상반신만 자란 태아 마루나가 들어 있었다. 마루나는 알을 깨뜨린 어머니를 저주하며, 하늘로 날아가서 ‘새벽의 붉은빛’이 되었다고 한다. 그 후 다시 500년이 지난 뒤 마침내 비나타가 낳은 또 다른 알에서 태어난 것이 가루다인데, 가루다는 힌두교 신의 하나이자 새들의 왕으로 불리는 전설상의 새로서 가루라(迦樓羅)로 음역된다. 이것은 인도의 전통 신화 리그베다에서 나오는 수파르나 신화와 매우 비슷한데, 가루다는 비슈누 신을 태우고 하늘을 날아다닌다. 대승불교 경전 등에서도 천룡팔부중(天龍八部衆)의 하나로 인용되며, 밀교에서도 대범천(大梵天)· 대자재천(大自在天) 등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나타난 것이라고 한다. 또, 문수보살의 화신이라고도 한다.

모나스 꼭대기의 전망대 입장료는 2만 루피아인데, 원화로는 약 1600원꼴이다. 전망대에 올라가면 광장 주변의 대표적인 감비르역, 대통령궁인 메르데카궁(Merdeka Palace), 국립 박물관, 대법원, 이슬람사원인 이스티클랄(Istiqlal Mosque), 정부 중앙관서 등 공공건물이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지만, 엘리베이터는 11인승 단 한 대뿐이니, 기다리고 불편한 상황이 벌어진다.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이슬람교도가 많은 나라이지만, 다양한 부족들이 믿는 신앙이 달라서 이슬람을 국교로 하지 못하고 있다. 1984년 지름 45m의 돔으로 세운 이스티클랄 사원은 동남아 최대의 모스크로서 12만 명 이상을 수용한다고 하는데, 참고로 이스티크랄은 아랍어로 '독립'을 의미한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