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人] 오늘도 2명이 일터에서 돌아오지 못 했다
이기준 사회부장
[금강일보 이기준 기자] 일터에서 발생하는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외침은 계속되고 있다. 택배노조는 최근 전국동시다발적 기자회견을 열어 택배노동자 과로사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와 기업의 책임있는 자세를 요구했고 택배노동자 고(故) 장덕준 씨 유족들은 지난 1일 대전을 찾아 가시지 않는 아픔을 담담하게 표현하면서 택배사의 열악한 근로환경 개선을 촉구했다.
지난달 26일 세종시 한 공장에선 한 화물노동자가 컨테이너 문을 열자 300∼500㎏에 달하는 파지더미가 쏟아져 숨졌다. 화물연대는 사측이 사고현장 보존 조치를 하지 않고 현장을 훼손하는 등 책임을 회피했다며 산재사고에 대한 저급한 인식을 꼬집었다. 지난 1일엔 충남 논산에선 돈사 배수관 설치 작업 중 무너진 토사에 매몰돼 근로자 1명이 숨졌고 지난달 아산에선 카자흐스탄 국적 근로자가 신축 공사현장 3층에서 크레인 작업 중 추락해 숨지기도 했다.
오늘도 어디선가 노동자 2명이 일터에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산술적으로 그렇다. 지난해 기준 산재 사망자는 882명이다. 하루 2.4명꼴이다. 공식적으로 산재 인정을 받은 사망자만 이렇다. 안타깝게 산재 인정을 받지 못한 사례까지 감안하면 훨씬 더 많은 노동자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1월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산재는 계속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 들어 산재 사망자는 1분기에만 238명이다.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15명, 5.9%가 줄었지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갖는 상징성을 생각하면 의미를 부여하긴 힘들다.
특히 문재인정부는 정권교체 초기인 2018년, 당시 한 해 1000명에 육박하는 산재 사망사고를 2022년까지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선포했는데 현재로선 드라마틱한 결과를 기대하긴 힘들어 보인다. 정부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국회 통과를 계기로 기업이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강화하도록 지도·감독하고 중소규모 사업장은 맞춤형 컨설팅, 안전투자혁신사업 등 다각적 지원을 통해 안전관리 역량이 향상되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혔지만 희망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국무회의에서 산재사고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공약을 충실히 이행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하면서 고용노동부장관에게 거듭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갖고 있는 근본적·구조적 한계에 대한 문제인식도 여전하다. 지난해 기준 사업장 규모별 산재사망자 현황을 보면 5∼49인 사업장이 45.6%를 차지하고 5인 미만 사업장도 35.4%에 이른다. 50∼299인 사업장의 산재사망자 비중은 2019년 17.2%에서 14.9%로 2.3%포인트, 300인 이상 사업장은 5.6%에서 4.2%로 1.4%포인트 줄었지만 산재사망자 10명 중 8명을 차지하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선 산재사망자 비중이 그만큼 더 늘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5인 미만 사업장은 이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있고 50인 미만(5∼49명) 사업장은 법 통과 뒤 3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4년에서야 법 적용을 받는다.
더 큰 문제는 산재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여야 하는 중소기업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때문에 죽겠다고 아우성이라는 점이다. 이들이 안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도 외면할 순 없는 노릇이다. 비용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산재사고가 이슈화될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특단의 대책 마련을 지시하지만 피부에 와닿진 않는다. 산재를 포함한 노동환경 개선 과제는 국정과제에서 항상 후순위에 밀려 있는 느낌이다.
대전시가 시행하고 있는 노사상생 좋은일터 사업이 하나의 방법론이 될 수 있다. 이 사업은 노사가 근로시간 단축과 워라밸 환경 조성, 노동안전문화 개선 등의 과제를 도출한 뒤 솔루션을 마련하면 지자체가 이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노사문제는 노사의 자체적인 협의와 합의에 기초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는 경험칙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좋은 일터를 만들기 위한 노사의 자체적인 노력, 그리고 이를 지원하는 지자체의 노력을 정부가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