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칼럼 - 길을 걷다] 먼지, 열기, 소음을 막는다…도시 숲의 매력
국립산림과학원 홍릉 숲
[금강일보] 지금 저 초록 아래에서는 / 얼마나 많은 잔뿌리들이 발끝에 힘주고 있을까 / 초록은 수많은 수직선 사이에 있다 / 수직선들은 조금씩 지우며 번져가고 있다 / 직선과 사각에 밀려 꺼졌다가는 다시 살아나고 있다 (…) / 아무렇게나 버려지고 잘리고 갇힌 것들이 / 자투리땅에서 이렇게 크게 세상을 덮을 줄은 몰랐다 / 콘크리트 갈라진 틈에서도 솟아나고 있는 / 저 저돌적인 고요 / 단단하고 건조한 것들에게 옮겨 붙고 있는 / 저 촉촉한 불길 - 김기택 ‘초록이 세상을 덮는다’ 中
우리나라 최초의 수목원으로 100년 역사의 홍릉 숲에 와서 읽어보는 시 한 구절은 새롭다. 여린듯해도 강인한 초록의 힘을 시인은 나직하지만 열정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뉴욕 센트럴 파크, 런던의 하이드 파크, 파리 불로뉴와 뱅센 숲처럼 도시 안에 대규모 녹지공간을 보유한 도시는 그래서 고단함과 삭막함을 일정부분을 상쇄 받는다.
번화가 바로 옆 또는 조금 떨어져 있더라도 울창한 숲과 나무, 꽃과 연못이 있는 녹색공간은 먼지와 열기 그리고 소음공해에서 도시를 보호하는 허파이자 공기청정기, 그늘 그리고 방음막이 된다. “당신이 정원과 서재를 가지고 있다면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라고 단정한 고대 철학자 키케로에 공감하는 것은 날이 갈수록 나무와 풀, 맑은 공기의 소중함을 깨닫는 까닭이다. 2100년 전 도시국가 로마에 살았던 키케로는 오늘의 아파트 문화를 예견한 것처럼 도시인의 꿈을 간명하게 설파했다.
아파트에 나름의 서재와 정원을 만들 수 있어도 생활소음, 면적의 제약으로 소망하는 그런 공간으로 자리 잡기는 어렵다. 전국 곳곳에 둘레길, 수목원, 식물원이 산재해 있지만 도심 가까이 일상생활 반경 안에 소규모라도 녹지공간을 조성하는 일은 그래서 국가와 지자체의 우선과제가 됐다. 책 한권 들고 서재와 정원 기능을 동시에 맡아주는 녹지공간을 찾아 초록에게 반갑고 고맙다는 인사를 보낸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