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부자 사유담(史遊談)] 백신
김기옥 사유담협동조합 이사
[금강일보]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단어가 백신이다. 라틴어 ‘Vacca(소)’가 어원이다. 백신 접종은 이제 인간에게는 생로병사의 일상이 됐는데 왜 ‘소’가 어원이 됐을까? 소의 고름을 소량 몸속에 넣으면 천연두에 걸리지 않게 된다는 것을 알아낸 제너의 연구가 첫 백신을 만들어 냈고, 그 고마움에 백신의 어원이 소가 됐다. 파스퇴르가 천연두 병원체를 확인하고 난 뒤 마침내 백신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다. 그 덕에 세계 20억 명을 죽였다는 천연두는 지구에서 완전하게 사라졌다.
코로나19 백신은 역사상 최단 시간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백신접종은 일부 선진국의 호사일 뿐 지구촌은 여전히 코로나 비상 사태다. 나라마다 온갖 로비를 통해 확보하고 있지만 수급이 원활하지는 않다. 돈을 줘도 구하지 못해 늘어나는 확진자와 사망자 앞에서 망연자실이다. 추워지기 전에 두 번을 맞으려면 시간이 없다. 어쩌면 세 번을 맞아야 할지도 모른단다.
백신 생산시설은 세계에 펼쳐있는데 왜 물량을 못 맞추는 것일까? 기술을 공유해서 단기간에 세계가 맞아야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그러나 정보공개에 대해서는 업체의 반대가 있다며 개발국은 차일피일 백신기술 공유를 미루고 있다. 이해는 한다. 15년 넘게 시간을 들여 인류에게 희망을 준 기업의 이익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세상이 멈춘 판국에 인류를 위해 공유할 수는 없는가?
혹자는 그렇게 기업의 공을 날로 먹으면 또 다른 비상 사태에 누가 날을 새가며 백신을 만들겠느냐고 하던데 사람을 구한다는 그 기쁨이라면 나는 두 번 세 번이라도 밤을 새고 낮을 새겠다.
1940년 초엽 무서운 전염병이 돌았다. 그것도 아이들에게 집중됐다. 이 병에 걸리면 근육이 약화하면서 팔다리부터 시작해 전신이 마비됐고 심한 경우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 질병은 척수성 소아마비였다. 백신도, 치료제도 없어 1952년 한 해만 5만 8000건의 소아마비가 발생했고 그중 3000명의 아이들이 사망했다. 아이들의 죽음 앞에 전세계는 두려워했고 소아마비의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두손을 맞잡았다.
1948년 조너스 소크 박사는 5년간의 연구 끝에 드디어 백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2차 세계 대전 중 나치의 생체 실험에 학을 뗐던 사람들은 임상에 응하지 않았고 백신은 마지막 단계의 검증을 남겨두고 연구가 멈췄다. 지체할수록 소아마비에 의한 유아 사망은 늘었고 소크는 자기 자신의 몸에 주사하기에 이른다. 보다 못한 아내도 자원을 했고 어린 자식들도 동참했다. 자신의 몸을 희생하면서까지 백신개발을 멈추지 않는 학자의 모습에 놀라운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22만 명의 자원봉사자와 180만 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2차 임상시험에 자원했고, 안전한 소아마비 백신이 마침내 세상에 나온다.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지만 소크 박사는 제약회사들의 고액 제안을 거절하고 백신의 특허권을 포기했다. 누구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백신 제조법을 무료로 공개했고 한 방송에 출연해 “태양에도 특허권은 없다”고 짧게 말했다.
소크 박사의 선한 영향력 덕분에 세계 모든 어린이가 단기간에 백신을 맞을 수 있었고, 미국에서는 1979년 공식적으로 소아마비가 사라졌다. 같은 상황, 다른 사연 앞에 과연 역사는 누구를 기억해 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