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人] 공정(公正)을 위한 국가균형발전
이기준 사회부장
[금강일보 이기준 기자] ‘사회 양극화’는 주로 인구 계층별 부(富)의 불평등에 대한 논쟁에서 자주 등장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재분배는 그 사회의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중요한 전제조건인데 이는 재분배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사회 양극화가 심화돼 이 문제를 해소하는 데 더 큰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나라들이 사회복지 또는 사회보장이라는 개념으로 이 경제적 격차가 더 크게 벌어지지 않도록 법·제도적 수단을 강구하고 있다.
사회 양극화의 문제는 비단 인구 계층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국토의 이용과 관련해서도 양극화는 사회적 갈등을 초래한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나뉘는 우리나라의 경우 이 갈등이 구조화되는 양상이다.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 현상이 그대로 적용돼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이 격차는 모든 분야에서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우리나라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는 오직 서울이다. 이 모든 것을 담아내고도 부족해 서울은 팽창의 팽창을 거듭하면서 급기야 ‘수도권공화국’을 만들어 냈다.
단적으로 국토의 12% 면적에 전체 국민의 절반이 살고 있다는 것만 보더라도 수도권이 얼마나 비대한지 알 수 있다. ‘수도권은 비만, 비수도권은 영양실조’라는 말이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최근 들어선 ‘지방소멸’의 위기도 가시화되고 있다. 출산가능 인구는 주로 대도시, 특히 수도권으로 빠져 나가고 그래서 아이를 낳아 키울 여건이 안 되니 인구구조는 자꾸 고령화돼 마을공동체가 사라지게 되는 무서운 결과가 초래되고 있는 거다.
‘서울이 아니면 그냥 다 시골’이라는 우스갯소리는 이제 그냥 웃자고 하는 말로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라던 문재인정권의 구호는 한 줄기 희망이었다.
그러나 문재인정부 집권 4년, 국가균형발전과 관련한 성적은 실로 참혹하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보다 더 적극적이고 과감한 지방분권·균형발전 정책을 펼치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물론 문재인정부만의 책임은 아니다. 청와대발 정권 초기 지방분권 개헌안을 별다른 논의도 없이 걷어찬 정치권의 책임도 크다. 그렇다고 문재인정부가 면책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보수야당은 지난 총선을 통해 국민적 심판을 받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지방분권·균형발전 정책의 추진동력을 다시 살려내지 못했다.
집권 여당은 이제 다시 내년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가균형발전을 내세우려 한다. 일부 대권 후보들이 국가균형발전과 관련한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게 먹힐까? 판을 깔아줘도 아무 것도 못한 여당이 다시 균형발전을 하겠다고 한 들 누가 믿어 줄까.
지난해 예산까지 배정해 놓은 국회세종의사당 건립도 이 핑계 저 핑계 둘러대다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오니 마지막 절차인 국회법 개정을 8월에는 처리하겠다고 한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을 전제로 한 혁신도시 시즌2와 관련해서도 아무런 진전을 보이지 않다 이제야 뭔가 하는 것처럼 말잔치를 벌이려 한다. 김부겸 총리가 얼마 전 대전을 방문해 2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계획안이 조만간 발표될 것처럼 운만 띄워 놓은 걸 보면 여당에서 얼마나 다급한지 짐작이 간다.
비수도권 입장에선 ‘세종시=행정수도’나 혁신도시 시즌2 등 국가균형발전 정책들이 여전히 ‘희망고문’이다. 특히 최근에서야 혁신도시를 품을 수 있게 된 대전·충남은 더하다.
당정은 이제 희망고문 그만 하고 결과물을 내놔야 한다. 물론 수도권에 있는 공공기관 몇 개 이전한다고 국가균형발전이 단숨에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현재 제시된 균형발전 정책들은 그간 국토의 불균형 발전을 초래한 과오를 조금이나마 되돌리는 역할일 뿐 그 이상을 기대할 순 없다.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아직 너무나 많다. 기회의 평등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공정한 경쟁 속에서 비수도권이 특화 발전할 수 있도록 기반을 더욱 공고히 다져야 한다. K-바이오 랩허브처럼 지방에서 기획한 사업들이 ‘공정’의 탈을 쓴 전국 공모로 수도권에 헌납되는 일이 더 이상 되풀이돼선 안 된다.
내년 대선 국면에서만큼은 지방분권·균형발전 이슈가 정책 대결의 중심에 서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