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열의 힐링여행 2] 89. 규슈국립박물관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금강일보] 어느 나라든 자국의 역사유물을 보존·전시하고 있는 국립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일본은 일본열도를 구성하고 있는 홋카이도, 혼슈, 시코쿠, 규슈 4대 섬 중 도쿄(1882), 나라(1894), 교토박물관(1897) 등 국립박물관 셋이 모두 혼슈에 있는데, 2005년 10월 4번째이자 혼슈 이외에 최초로 규슈국립박물관을 개관했다.
그런데 규슈박물관은 후쿠오카(福岡), 사가(佐賀), 나가사키(長崎), 오이타(大分), 구마모토(熊本), 미야자키(宮崎), 가고시마(鹿兒島), 오키나와(沖縄) 등 8개 현(県)이 있는 규슈에서 인구 160만 명으로 일본 제8위의 대도시이자 규슈의 정치, 경제, 문화, 교통의 중심지인 후쿠오카가 아닌 후쿠오카 남쪽 약 16㎞ 떨어진 인구 7만 3000명의 작은 도시 다자이후시(太宰府)에 세웠다,
다자이후시는 7세기 후반부터 규슈 전역을 통치하던 지쿠젠국(筑前国)의 다자이후(太宰府)가 있던 고대도시로서 후쿠오카에서는 차로 30분쯤 걸린다. 열차는 후쿠오카의 톈진역에서 니시테츠(西鉄) 다자이후역에서 내린 뒤 동쪽으로 10분가량 걸어가면 규슈국립박물관이 있다.
우리는 렌터카로 도시고속도로를 달려 다자이후에 도착한 뒤, 텐만구와 박물관의 중간쯤에 있는 한 사설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산 중턱에 있는 규슈박물관으로 올라가는 정문의 동쪽과 남쪽에 대형 주차장이 있지만, 박물관을 돌아본 뒤 텐만구신사(天滿宮 神社)까지 돌아본 뒤 주차장까지 가려면 너무 멀었기 때문이다.
사실 규슈박물관은 일본에서 ‘학문의 신(神)’으로 숭상하는 스가와라노 미치자네(菅原道真: 845~903)를 모신 다자이후 텐만구 신사 뒷산에 있다. 또, 텐만구 신사 뒤편에 박물관까지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있어서 대부분 개관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박물관보다 1000년 이상 되는 신사를 먼저 찾아본 뒤 규슈박물관을 찾아간다.(다자이후 덴만구에 관하여는 2021. 11. 3. 여행기 참조)
그런데 그 에스컬레이터가 참으로 예술적이다. 단순히 몇십 미터를 한꺼번에 쭉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두 개 라인의 에스컬레이터가 경사지를 올라가다가 공항처럼 일정부분은 평지를 걷거나 무빙 워킹 구간도 있다.
또, 동굴 안을 온통 진한 파란빛 LED 조명시설로 눈의 피로를 풀게 한 것도 매우 이색적이었는데, 아마도 에스컬레이터를 단번에 올라갈 때의 가파르고 지루함을 덜기 위한 배려인 것 같다. 에스컬레이터 옆에는 별도로 계단을 만들어서 계단을 걸어서 올라갈 수도 있고, 에스컬레이터 양쪽 벽면에는 다양한 박물관 홍보와 특별전시 일정을 알리는 포스터가 붙어있다.
에스컬레이터를 나서면 산 중턱에 있는 큼지막한 박물관이 보인다. 규슈국립박물관은 지하 2층 지상 5층이라고 하지만, 폭 80m, 길이 160m, 높이 36m의 건물 외관은 산맥 혹은 파도를 이미지화한 곡선형 지붕에 건물 전체를 파란색 이중유리로 지어서 박물관이라기보다 마치 테마파크나 체육관 건물처럼 보였다.
박물관은 오전 9시 반부터 오후 5시까지 개관하지만, 주말인 금·토요일에는 밤 8시까지 개장한다는 점은 관객을 위한 좋은 배려라고 생각되었다. 건물 밖의 작은 매표소에서 입장료 430엔을 내고 입장권을 샀는데, 외국인들에게 가이드 라디오를 빌려주기도 한다. 휴대폰 크기만 한 가이드 오디오는 한글 안내도 가능하다.
일본의 다른 국립박물관이 100여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데 비하여 불과 15년 전에 개관한 규슈국립박물관은 ‘일본문화의 형성을 아시아의 역사적 관점에서 조명한다’라는 주제 아래 학교보다 재미있고, 교과서보다 알기 쉽게 보여준다는 목표를 강조하고 있다.
이런 의도는 박물관의 위치와 초현대식 건물구조, 그리고 전시물의 전시 방법 등이 상상을 초월하게 했는데, 1층에 들어가면 넓은 로비이다. 한쪽에는 아시아 문화체험 공간인 ‘아짓파(あじっぱ)’가 있는데, ‘아시아의 들판’이란 의미의 아짓파를 마치 기념품 가게처럼 꾸미고,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곳에는 한국, 중국, 몽골, 베트남, 태국 등 아시아는 물론 옛날 일본과 교역했던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의 토속 민속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한국관에는 팽이, 제기를 비롯한 놀이기구와 탈, 전통의상 등이 있고, 한국의 조각보를 이용한 그림그리기, 퍼즐 맞추기를 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또, 이곳에서는 일본과 교류했던 각국 민속의상이나 전통악기 등을 직접 만들고 체험해 볼 수 있으며, 매주 일요일 오후 2시에는 평소 공개되지 않은 문화재 보존시설을 둘러보는 투어도 진행된다고 한다.
2층은 사무실과 수장고가 있는 공간이어서 전시실은 3층부터 시작된다. 3층은 특별전시실이고, 4층이 일반 전시실이다. 1층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곧장 3층으로 올라가는데, 특별전시실은 따로 입장료를 받는 것은 우리 박물관 운영과 마찬가지다.
4층은 문화교류전시실로서 기본전시실과 관련 상설전시실로 나뉘는데, 상설전시실은 1) 구석기~조몬 시대(초록색), 2) 야요이~ 고훈시대(빨강), 3) 나라~ 헤이안 시대(보라색), 4) 가마쿠라~모모야마 시대(파랑), 5) 에도시대(주황) 등 5개의 주제로 나눠서 전시하고 있다.
맨 오른쪽부터 기증품 기념실, 동아시아의 고대 왜인들의 생활, 고분과 제사, 견당사와 실크로드, 규슈의 명품인 도자기 생산과 교역, 외국과의 인적 물적 교류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일체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우리의 국립중앙박물관 등 박물관 대부분에서는 사진 촬영이 가능한 것과 크게 다르다.
규슈의 지리적 특성상 한반도와 관련된 유물과 자료가 많을 것으로 기대하고 찾아갔지만, 규슈 지역에서 출토되거나 기증받은 수십 점의 국보와 중요 문화재 등 800여 점만 전시하고 있어서 외양만 그럴듯할 뿐 양과 질적인 면에서는 일본의 다른 3개 국립박물관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빈약했다.
규슈국립박물관에서 가졌던 아쉬움은 나가사키에 가서 나가사키현립박물관을 관람하면서 많이 해소되었다. 또 거대한 초현대식 건물에 ‘일본문화의 형성을 아시아의 역사적 관점에서 조명한다’라는 거창한 주제로 세운 규슈박물관은 오랫동안 아시아의 변방이던 일본이 아시아의 중심이었다는 어그러진 자만심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조금은 거부감이 생기기도 했다.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