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칼럼 - 길을 걷다] 생선의 문화사, 대구의 세계
입이 큰 생선 대구(大口)
[금강일보] 대구(大口)의 계절이 돌아왔다. 글자 그대로 입이 큰 생선으로 대구 외에 대구어, 구어, 화어 등 모두 한자로 큰 대(大)자에 입 구(口)로 이루어진 이름을 갖고 있다.
길이는 30㎝~1m에, 큰 것은 무게가 20㎏에 이르는 듬직한 생선으로 특히 머리 부분이 커서 대구 뽈(볼)찜이라는 요리가 따로 있을 뿐만 아니라 간은 간유(肝油)의 원료로 쓰일 정도로 거의 모든 부위를 먹을 수 있는 유용한 생선이다.
역사 또한 오랜 편이어서 중세 유럽에서 식용 어류 가운데 약 60%가 대구였다고 하니 어획을 둘러싼 유럽 여러 나라의 경쟁은 문화사, 사회사의 중요한 대목을 이루고 있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보인 호사가였는데 그가 1873년에 발표한 ‘요리대사전’에는 대구알들이 부화되는 것을 막지 못해 모두 온전한 개체로 성장한다면 3년 안에 대구가 바다를 덮을 것이고 대구 등을 밟으며 대서양을 건널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뒤마의 재치와 상상력이 가미된 표현이겠지만 대구의 놀라운 번식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북유럽 바이킹들은 대구를 말려 식량으로 썼고 그 후 스페인 인근 바스크족들은 소금에 절여 더 합리적으로 보관하는 방법을 활용하여 부를 축적하기도 하였다.
중세 말엽인 15세기부터 대구의 판매가 활발하였고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한 해상무역에서 대구는 중요한 교역품목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17세기 이후 성행한 노예무역으로 아프리카에서 대구 수요가 급증했다는 기록도 있다 보니 세계사에서 대구가 차지한 독특한 위상을 짐작해 본다.
입이 큰 생선 대구, ‘치’자가 들어가는 생선에 비해 한 급 격이 높다고 하는 ‘어’자가 들어가지 않아도 인류역사와 더불어 톡톡히 제값을 하였던 생선이 대구였던 것이다.
산업이 진보하면서 냉동기술이 발달하고 대규모 육류생산으로 수요가 크게 줄어들어 대구의 위상은 일견 쇠락하는 듯하였다.
그러나 근래 건강식으로서의 대구에 대한 관심, 붉은 고기 기피현상 등 여러 상황변화로 다시 수요가 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대구 조업, 물류는 경남 거제를 중심으로 활성화되고 있는데 겨울바람을 맞으며 대구를 즐기는 대구축제가 지난해, 올해 연거푸 코로나로 인하여 열리지 못하고 온라인 판매로 대체된다고 하니 자못 아쉽다.
<한남대 프랑스어문학전공 명예교수,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