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人] 지방정치 발목잡는 중앙정치

이기준 편집부국장

2022-04-05     금강일보

[금강일보] 지방선거가 두 달도 채 남지 않았지만 분위기는 ‘이래도 될까’ 싶을 정도로 가라앉아 있다. 예년 같으면 벌써 공천경쟁에 선거 이슈에 대한 갑론을박으로 시끄러웠을 텐데 이번 선거는 조용하다 못해 느긋하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예비후보들의 움직임이 굼뜨다.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안달이 났어야 할 시점인데 후보 자체가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지방의원(광역·기초)선거가 특히 그렇다. 광역·기초단체장선거의 경우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나고 있지만 지방의원에 출마한다는 후보들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가뜩이나 지방의원선거는 ‘깜깜이 선거’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는데 이번 선거는 더 그럴 것 같다. 유권자들은 이번에도 역시 누가 후보인지도, 그 후보가 어떤 공약을 내세웠는지도, 그 후보가 어떤 인생의 궤적을 그려왔는지도 모른 채 기표소에 들어서 허겁지겁 감이나 촉으로 투표를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자신의 거주지가 어떤 선거구에 속해 있는지도 모를 수 있다. 그러니 아예 투표 자체를 포기할 수도 있다. 누구의 잘못인가. 유권자의 문제인가? 아니다. 명백한 국회의 잘못이다.
현재 예비후보들이 머뭇거리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아직 선거구가 확정되지 않아서다. 단체장선거의 경우 변수가 없지만 지방의원선거는 다르다. 선거구가 획정돼야 후보자들이 출마할 선거구를 정해 예비후보 등록을 하고 해당 선거구의 특성을 반영한 정책·공약으로 표심에 다가서는데 여전히 선거구 획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판 자체가 깔리지 않았다는 얘기다.

국회는 2018년 광역의원선거의 인구편차 허용기준을 강화(4대 1→3대 1)하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지난해 12월 1일까지 공직선거법을 개정했어야 했다. 선거구 개편이 불가피한데 여야는 대선에 집중하느라 헌재의 권고를 어겼다. 헌재 결정에 따라 광역의원의 수를 결정하고 이에 따라 선거구를 획정해야 했지만 오직 대권을 잡는 데만 몰두했다. 행정안전부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방선거 일정을 고려해 지난달 18일까지 답을 달라고 요청했지만 이 시한마저 넘겼고 4일 본회의 처리도 무산됐다. 중앙 정치권, 즉 국회의 직무유기가 지방정치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물론 ‘정치는 생물’이라 늘 살아 숨쉬기 때문에 결정적인 순간에 적절한 타협이 이뤄지긴 하지만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대로 법 개정(광역의원 정수 조정 및 선거구 획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번 지선은 현행법 체계에서의 선거구로 선거를 치르게 되는데 그러면 이번 선거는 위헌적인 법률로 선거를 치르게 되기 때문에 이에 따르는 부작용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지방자치제 부활 이후 벌써 여덟 번째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지지만 여전히 지방정치는 중앙 기득권 정치의 볼모로 사로잡혀 있다. 국회가 일을 하지 않으면 그 피해는 오롯히 민생의 몫으로 돌아온다. 행정부의 영역에서 지방분권이 중요하듯 정치의 영역에서도 지방분권이 시급하다. 언제까지 중앙이 다 틀어쥐고 지방까지 좌지우지 할 건가. 하려면 잘 하든가.

입법부(국회)가 입법권력의 견제장치라고 할 수 있는 사법부의 권위도 이리 가볍게 짓밟을 수 있다는 데 대해선 입을 다물 수가 없다. 결국 국민의 심판(선거)에 기댈 수밖에 없지만 선택권이 없다. 어차피 민주당과 국민의힘 둘 중 하나다. 우리 정치권엔 대안 세력이 없다. 이들이 설 수 있는 자리를 거대 양당이 철저하게 차단해 놓았다. 압도적인 국민적 지지로 정권을 잡았다가 5년 만에 대권을 넘겨 준 민주당이 정신을 차리고 제3 정치세력의 정치권 진입 장벽을 허물겠다며 중대선거구제 도입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이 카드가 되레 국회 정개특위 직무유기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민주당이야 국민의힘이 정치개혁을 가로막고 있다고 비판하고 싶겠지만 과연 국힘의 반발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애초에 명분만 챙기고 슬그머니 뒤로 빠지려는 계산은 없었을까? 그게 아니라면 민주당이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딱 한 번 남았다. 4월 임시국회에서 힘으로 밀어붙이는 수밖엔 없다. 국민의힘 입장에선 이를 역으로 이용해 ‘민주당의 독재’를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스스로 수구·기득권 정당 이미지를 공고히 하는 반작용을 피할 수 없다.

‘공정’과 ‘개혁’은 우리의 시대정신이다. 국회 정개특위는 정치적 계산에서 한 발 물러서 민생을 바라보기 바란다. 국회만 쳐다보고 있는 유권자와 예비후보들을 바라보라. 더이상 시간 끌 일이 아니다. 이미 국회는 지방선거를 망쳤다. 더 큰 화를 자초하지 말라. 국민(유권자)의 명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