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부자 사유담(史遊談)] 대전사람 수부씨

김기옥 사유담협동조합 이사

2022-04-26     금강일보

[금강일보] 40년도 넘은 빈집에 기억을 잃고 식물처럼 누워계시는 아버지, 기억의 50%도 남지 않으신 어머니, 이제 퇴직을 한 환갑의 큰딸, 사고로 아들을 잃고 넋을 놓은 작은딸,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 온가족을 피말리고 설날에 하늘로 간 외아들, 하는 일이 재미없다는 셋째딸, 그리고 막내딸이 무언가 해보기로합니다. 벽지랑 등만 바꾸고 사람이 오거나 말거나 이공간에 찻집을 내보자고 맘을 먹었답니다. '비만 안 새면 되지'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비어버린 친정집을 정리하다가 사진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아버지의 80대 중반 어느날 혼자 가셔서 찍으신 것 같습니다. 비닐에 곱게 싸여진 채로 LP판 사이에서 찾았습니다. 어느날 필요할 때 쓰라고 찍으신것 같은데, 아빠는 왜 수염도 깎지 않으시고 '추리닝'을 입고 가신 걸까요?

사진 한장을 앞에 놓고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아버지는 무뚝뚝하신 분이셨는데 여름이면 시골밭에 흔하디 흔한 까마중 이라는 꺼먹딸기를 마루에 썩 베다놓아 두셨다고 합니다. 이슬도 못 떨구고 놓여 있던 그 딸기는 사랑이었겠죠? 투박하지만 언제나 진심이셨던 아버지를 기념하고 싶어졌다고 합니다.

딸들은 제과제빵기능사를 한방에 땄고, 홍차를 배웠고, 커피를 배웠다고 합니다. 현란한 계획은 현실 속에서 부질없어 졌고 그냥 집에 와서 따뜻하게 먹고 가게 하자는 소박한 목표를 다시 세웠다고 합니다. 우리가 먹는 것에 최선이었듯이 그렇게 팔아보자고 했답니다.

대전광역시 도마변동 4지구는 재개발지역입니다. 길어야 4년도 못할 찻집이 만들어졌습니다. 아버지도 가고 어머니도 가고 이 집도 그리고 딸들의 기억도 떠나겠지요. 이제는 사라지게 될 아무것도 아닌것들을 배웅하듯 작은 찻집이 열렸습니다. 아버지의 집에서 아버지의 딸들이, 대전사람수부씨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