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운의 우문우답] ‘혁신’ 노이로제와 피로감
논설위원
우리 사회 내 모든 조직은 구성원에게 끊임없이 혁신을 요구한다. 그러다 보니 하루가 멀다고 듣는 말이 ‘혁신’이다. 비슷한 말로 ‘개혁’이 있지만, 양자 간의 분명한 차이는 있다. 개혁이 구조의 변화를 지칭하는 것이라면, 혁신은 질적 변화를 일컫는다.
굳이 구분하자면, 개혁은 표면적이고 혁신은 내면적이라 할 수 있다. 혁신은 정신을 뜯어고치는 것이니 개혁보다 본질적인 변화이다.
변화를 말하면서 반드시 한자 ‘가죽 혁(革)’을 사용한다. 가죽을 의미하는 혁(革)은 털이 나 있는 짐승의 껍질에서 털을 벗겨내고 무두질이란 가공 과정을 거쳐 재질을 부드럽게 하고 새로운 제품으로 만들 수 있는 재료로 재탄생 시킨 상태를 가리킨다.
한자의 뜻을 풀어놓은 자전(字典)인 ‘설문해자(說文解字)’는 ‘獸皮治去其毛曰革(수피치거기모왈혁)’으로 설명하고 있다. 해석하면 ‘짐승의 껍질에서 털을 뽑아 다듬은 것을 革(혁)이라 한다’이다.
거친 짐승의 껍질을 다듬어 부드러운 가죽으로 만들어야 그것으로 신발도 만들고 가방도 만들 수 있다. 혁신은 전체적인 체질을 변화시켜 더 쓸모있는 상태로 만드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혁신이란 말은 널리, 아주 자주 쓰인다. 공사의 구분 없이 조직은 늘 ‘혁신’을 외친다. 뭘 그렇게 바꾸겠다는 것인지 하루라도 ‘혁신’이란 말을 듣지 않는 날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혁신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저 눈에 보이는 것을 살짝 바꾸는 것을 혁신이라고 하지 않는다. 혁신은 가죽을 바꾸는 변화란 뜻이다. 굳이 거칠게 표현하자면 살갗이 벗겨지는 고통을 감내해야 얻을 수 있다.
작은 변화를 도모하고자 할 때 혁신이란 말을 쓴다면 적합하지 않다. 구성원 모두의 의식체계를 뒤바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고자 할 때 혁신이란 말을 쓴다. 물리적 변화에 머물지 않고, 화학적 변화를 동반해야 진정한 혁신이다.
그러나 너무 자주 혁신을 외쳐대다 보니 혁신이란 말에 무감각해졌다는 점이 문제다. 조직은 혁신을 외쳐대지만, 구성원은 긴장감 있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너무 자주 혁신을 외치다 보니 그 말에 무감각해진 것이다.
어떤 조직은 시도 때도 없이 혁신을 주문하니 구성원이 혁신에 대해 피로감을 느껴, ‘노이로제’를 성토하는 사례도 넘쳐난다. 그래서 혁신이 구두선(口頭禪)에 머무는 일도 다반사다.
기관이나 단체의 수장이 바뀌면 어김없이 조직의 쇄신과 변화를 주문하며 ‘혁신’을 외친다. 그러면 조직은 혁신을 전담할 기구를 설치하고 인력을 배치한다. 외부인사를 영입해 혁신을 주도하게 하는 사례도 있다. 하지만 혁신을 성공으로 이끌어 조직을 대대적으로 변화시키는 사례는 흔치 않다.
몇 가지 제도 개선을 도출해내고 혁신을 마무리했다고 자평하는 사례가 많다. 이는 전적으로 변화하고자 하는 자세와 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변화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없이 혁신이란 무거운 용어를 들이댔기 때문이다.
혁신하고자 한다면 최우선으로 구성원에 대해 혁신이 꼭 필요하고,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함을 느끼게 해야 한다. 혁신은 처절한 자기반성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문제점을 진단하지 못하고 절박함을 체감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작하는 혁신은 성공할 수 없다. 그래서 몇 가지 드러나는 문제를 해결할만한 수준의 개혁안만 확정 짓고, 그것을 혁신이라고 자위하는 사례가 넘쳐난다.
혁신은 통렬한 자기반성에서 시작해, 가죽을 벗겨내는 고통을 감내하며 진행해야 한다. 내가 누리던 기득권을 과감히 포기해서 조직 전체가 한 발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기틀을 만들지 못하면 혁신은 공허해진다.
구성원은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기득권자가 기득권을 내려놓을 때 혁신은 성공할 수 있다. 나는 내 것을 지키고, 남들이 양보해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혁신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 노이로제와 피로감만 안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