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열의 힐링여행 2] 147. 트레비분수(Fontana di Trevi)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

2023-01-03     금강일보
▲ 트레비분수.

로마의 지하철은 1959년 바티칸과 로마 시내까지 처음 개통했지만, 계속 발굴되는 유적 때문에 공사를 중지해서 지하철 코스는 모두 4개뿐이다. 지하철 A선은 바티칸에서 스페인광장과 트레비분수까지 통하는 코스이고, B노선은 콜로세움 경기장에서 베네치아광장으로 통하는 코스다. 지하철은 우리보다 일찍 개통된 탓인지 매우 낡고 허술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
트레비분수를 만든 아그리파 황제상.

바티칸에서 로마로 돌아오면서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트레비분수(Fontana Trevi)였다. 지하철 A선 매자나무니 역(Barberini)에서 도보로 약 5분 거리인 트레비분수는 베네치아광장에서도 도보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시내 중심에 있다. 또, 트레비 분수에서 도보로 4∼5분 정도 골목길을 들어가면 팡테온 신전이다. 팡테온 신전은 BC 27년 아우구스투스 대제의 양자이자 사위인 아그리파 황제(Agrippa: BC 63~BC 12)가 당시 로마의 전통 신을 위하여 지은 신전으로서 고대 로마의 신전 중 가장 거대할 뿐만 아니라 가장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다.

이렇듯 구도심에서는 지척이 유적과 유물이어서 걷는 관광 코스가 많은데, 트레비란 세 개의 길이 만나는 삼거리라는 뜻이다. 전해오는 이야기는 로마 시대에 전쟁터에서 돌아온 병사들이 목이 말라 물을 찾아 헤매던 중 한 처녀가 알려준 곳을 따라가 발견한 샘터가 이곳이라고 한다. 이 샘은 로마제국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에 의하여 “처녀의 샘”이라고 불리다가 삼거리인 트레비 거리에 있다고 해서 ‘트레비분수’로 불렀다.

트레비분수 전경.
교황 클레민스 13세 명판.

로마 시내에는 테베레강이 흐르고 있지만, 수량이 넉넉하지 않았다. 더욱이 로마는 화산암 지대여서 시민들의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도시 근교에 수원지(水原池)를 만들어서 시내까지 물을 끌어왔다. BC 19년 아그리파 황제는 22km 떨어진 살로네 샘에서 이곳까지 물을 끌어와서 처음으로 분수를 만들었는데, 당시에는 지하수로를 통하여 물을 끌어왔는데, 이것을 ‘처녀 수로’라고 했다. 그러나 476년 동고트족이 로마제국을 공격할 때, 수로를 모두 파괴하여 로마인들을 물 부족으로 쉽게 무너뜨렸다. 트레비 분수도 이때 파괴된 이후 1,000년 동안 방치되었다가 1485년 교황 니콜라우스 5세에 의해 복원되었다.

지상으로 긴 수로를 만들어서 도시로 유입된 물은 대부분 공동 우물이나 분수로 모였는데, 로마의 수도교(水道橋)는 1960년대 우리 농촌에서 다랑논에 물을 대기 위하여 만든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성벽처럼 튼튼하고 높다랗게 설치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 1726년 즉위한 피렌체 출신의 교황 클레멘스 13세는 1453년 교황 니콜라우스 5세가 처음 만들었던 ‘처녀의 샘’을 부활하려고 공모하여 당선된 30세의 젊은 건축가 니콜라 살비(Nicola Salvi)의 설계로 1732년에 착공하여 1762년까지 30년 만에 트레비분수를 완성했다.

해마를 이끄는 트리톤.

로마는 소중한 물을 보존하는 분수를 만들면서 신전(神殿)에 못지않게 화려하게 장식했는데, 트레비분수는 하얀 대리석으로 지은 나폴리 궁 팔라초 폴리(Palazzo Poli)의 벽면을 이용하여 개선문을 모방한 배경에 돋움식 벽화와 바위로 장식했다. 그렇지만, 사실 팔라초 폴리 궁전은 트레비 분수가 완성된 후 분수에 맞추어 가운데 부분을 부수고 개축한 것으로서 건물의 옆면만 보면 로마에서 흔한 모습인 것을 알 수 있다.

로마의 분수 160개 중 가장 걸작이 바로크 양식인 트레비분수를 세분해보면, 건물 제일 꼭대기에는 교황 클레멘스 13세의 라틴어 ‘CLEMENS VII’ 이름이 새겨있고, 그 아래에 “처녀의 샘(AQVAM VIRGINEM)”이라고 쓰여있다. 가운데의 반구형 돔 가운데의 남성은 트레비분수를 처음 건설을 지시하고 있는 아그리파 황제이고, 오른쪽은 목마른 병사에게 샘이 솟는 곳을 알려주었다는 신비의 처녀를 형상화했다. 트레비 분수의 중앙에 있는 근엄한 모양의 부조물은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이며, 포세이돈의 양쪽에 있는 두 명의 여신은 풍요와 건강을 상징하며, 양쪽에 말을 잡은 두 명의 신은 포세이돈의 아들인 트리톤(Triton)이다. 한 트리톤은 해마를 길들이고, 다른 한 트리톤은 동물을 타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분수 남쪽 도로의 여행객.

분수의 물은 넓은 대양을 상징하는데, 대리석으로 만들었지만, 바로크 특유의 생동감 넘치는 움직임이 살아 있다. 주위의 커다란 바위 사이에서 끊임없이 물이 흘러나와 연못을 이루는데, 왼쪽 분수의 물줄기는 잔잔하게, 오른쪽 분수는 빠르게 흐르게 한 것은 로마제국을 강건하게 만든 율리우스 시저가 서방을 정복한 이후 안정되었다 해서 왼쪽은 제국 로마의 서방을 의미하여 잔잔하게 표현하고, 오른쪽은 게르만, 파르티아, 페르시아 등이 항상 긴장감이 감돈다고 하여 급류로 표현했다고 한다. 특히 트레비 분수는 아래에서 위로 솟아오르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쏟아지고 있는데, 이것은 고대 성지에서 살던 귀족들에게 물을 높은 곳에서 공급하는 수도교 장치 때문이다.

트레비분수의 물은 로마에서 가장 부드럽고 맛이 좋다고 알려져서 수 세기 동안 바티칸 궁으로 공급할 정도였으며, 로마에 사는 영국인 차 제조업자들은 단지에 담아서 차를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분수를 처음 설치하였을 때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오늘날 높은 빌딩 사이에 있는 분수대는 전면 계단 외에 비좁게 느낌이 들었다. 로마 시대에 우리네 여인들이 전쟁터로 간 자식의 무사 귀환을 염원하듯 애인의 무사 귀환을 기도하며 이곳에 동전을 던졌다고 한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미장원.

그것이 지금까지 전해져서 로마를 찾은 여행객들이 이곳에서 분수를 등지고 동전을 던져서 들어가면 로마에 다시 오게 되고, 두 개가 들어가면 연인과의 사랑이 이루어지며, 세 개가 들어가면 그 사람과 결혼한다는 속설이 있다. 분수 밑바닥에는 세계 각국에서 로마를 찾아온 관광객들이 던진 형형색색의 동전들로 가득한데, 로마시에서는 매년 말 이 동전을 모아서 불우이웃돕기로 사용한다. 2차 대전으로 파괴된 로마 시내의 문화유산을 소개하기 위하여 1953년 미국의 로마 주재 기자인 그레고리 펙과 가상의 왕국 공주인 여주인공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영화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에서도 오드리 헵번이 이곳에서 동전을 던졌다. 트레비 분수는 야간에 분수 밑바닥을 오색조명으로 장치하여 더욱 아름답다.

영화에서 공주가 긴 머리칼을 짧게 자른 미장원은 분수 오른편 상가의 맨 끝이었는데, 지금은 세계 각국에서 로마를 찾은 여행객들을 겨냥하여 구두와 가방 등 가죽제품을 파는 상점으로 변신했다. 그뿐만 아니라 분수 주변의 건물들은 온통 관광객을 상대로 아이스크림이나 본젤라토, 음료수, 기념품 가게들로 성황이다. 또, 소매치기가 넘쳐난다.

정승열 법무사, 수필가,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