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운의 우문우답] 입시가 교육인가?
논설위원
대한민국의 ‘교육열’은 세계 최고라고 이미 만방에 소문이 났다. 우린 최단기간에 가난을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이루어내 세계 모든 나라가 부러워하는 국가가 되었다. 이 모두가 교육의 덕이라고 우리는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 한국인의 교육에 대한 신념은 다른 어느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견고하다. 이런 구조 속에 대한민국에서 세계 최초로 ‘교육열’이란 말이 생겨났다.
그러나 ‘교육열’이란 용어의 뜻을 살펴보면 교육에 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참으로 많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교육열은 대단히 긍정적인 말처럼 느껴질지 모르나, 실상 반대로 퍽 부정적 의미가 있다. 서구에는 마땅한 용어가 없어 영어를 비롯한 라틴계 언어에는 교육열을 대처할 말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없는 ‘자녀교육을 위해 지나치게 자신을 희생하는 부모’, ‘오로지 개인의 욕심만을 위한 공부’를 지칭하기 때문이다.
지나친 교육열로 인한 부작용이 점점 심해지고 있어 이 단어의 부정적 이미지는 날로 심해지고 있다. 선각자들은 한국 사회의 지나친 교육열을 무엇보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국민적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여러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교육’이란 용어를 ‘입시’로 이해하고 있고, 두 용어를 통용해 사용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는 대한민국 사회에서만 나타나는 대단히 특수한 상황이다. 교육과 입시는 엄연히 다른 문제인데, 한국인 간의 대화에서 교육이란 용어가 입시란 용어를 대체해 사용되는 사례를 자주 접하게 된다.
교육열이란 용어는 ‘학생이 지적 탐구심을 발휘하여 삶에 필요한 지식을 얻고자 하는 열망’을 일컫는 학구열과 정반대의 개념이다. 오직 자녀를 명문대학에 진학시켜 안정적인 직업을 갖게 하고 싶어 과욕을 부리는 현상일 뿐이다. 또는 입시의 극심한 경쟁을 의식해 학생 스스로 탐구열은 뒷전으로 한 채 성취욕만 앞세우는 현상을 지칭하기도 한다. 그러니 교육열은 ‘교육의 본질을 한참 벗어난 왜곡된 욕망’으로 해석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런 면에서 교육열은 절대 자랑스러워할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본래 교육의 목적은 교육은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는 인간을 육성’하는데 둔다. 그렇다면 우리의 교육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 1인당 국내총생산이 3만 달러를 훌쩍 넘어서 세계 10대 강국의 반열에 오른 국가에서 교육열이란 멍에를 쓴 채 행해지고 있는 입시경쟁을 교육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부끄럽게 짝이 없는 현실이다.
어린아이까지 포함해 젊은이들과 대화하다 보면 그들의 마음속에 욕망이 들끓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세상을 오로지 경쟁으로만 바라보고 있고, 물질적 부와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 혈안이 돼 있음을 느낀다. 더 섬찟한 일은 부모를 필두로 사회 전체가 그들에게 그런 사고를 강요하고 있고, 그들은 이미 그런 가치관에 매몰돼 있다는 사실이다. 기성세대가 그들이 어릴 때부터 입시가 곧 교육이라고 가르치며 세상은 사바나 초원이나 원시 밀림의 동물 세계처럼 ‘죽이지 않으면 죽는 구조’라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환경파괴, 기후위기, 저출산 등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시급한 과제에 대한 교육은 늘 뒷전이다. 입시와 경쟁만 있을 뿐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잔혹한 자본주의 환경이 세팅돼있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자라고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은 ‘인격도야’나 ‘인류공영’에 별 관심이 없다. 입시경쟁에서 이겨 풍요를 누리며 살아야 한다는 욕망만 가득하다. 입시는 교육이 아닌 입시일 뿐이다. 이 문제의식을 사회가 함께 인식하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