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운의 우문우답] 시민, 그 진정한 의미

논설위원

2023-05-02     금강일보

중고생 시절 세계사를 배우면서 ‘시민혁명’을 접했다. 시민계급이 형성되면서 그들이 주도하여 왕정을 무너뜨리고 시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를 이루어냈다고 들었다. 처음 ‘시민’이란 말을 접했을 때는 의문을 가졌다.

수업의 맥락상 그저 ‘행정구역이 광역시나 일반시인 시(市)에 사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님을 느꼈다. 뭔가 다른 뜻이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굳이 질문하지 않았다.

꼭 꼬집어 무슨 의미라고 규정하지는 못하겠지만, 대충 어떤 뜻을 가진 용어라는 생각은 했다. 단순히 군에 사는 군민, 구에 사는 구민의 상대개념으로 ‘시에 사는 사람’을 지칭하지는 않는다고 확신했다. 그렇지만 그 개념을 명확하게 밝힌 자료를 찾지 못했다. 다만 뭔가 주도적인 사람을 일컫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한참의 세월이 흘러 찾아보니 시민은 두 가지 의미로 정의돼 있었다. 하나는 말 그대로 ‘시 지역에 사는 사람’이었고 다른 하나는 ‘국가사회 일원으로서 그 나라 헌법에 따른 모든 권리와 의무를 지는 자유인’이었다. 그렇다. 내가 알고 싶어 하는 시민의 의미는 후자였다. 어렴풋이나마 내가 개념 잡고 있던 의미가 본래의 뜻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았다.

소극적인 의미의 시민은 그저 시 지역에 살고 있으면 된다. 어떤 부가적인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적극적인 의미의 시민은 어디에 사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 신분이다.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권리와 의무를 제대로 인지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이런 의식을 ‘시민의식’이라고 한다.

국민은 특정 국가의 국적을 얻으면 저절로 얻는 신분이다. 소극적 의미의 시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적극적인 의미의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헌법에 관해 정확히 이해해야 하고, 거기서 보장하는 권리와 의무를 다해야 한다. 권리와 의무 중 무엇 하나에 소홀해도 올바른 시민이라 할 수 없다. 주권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시민 활동에 나설 때 진정한 시민이 된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라는 법언(法言)은 어쩌면 시민정신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다. 독일의 법학자 루돌프 폰 예링이 그의 저서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 언급한 이 말은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사람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모든 국민이 의무만 성실히 수행한다고 해서 국가가 제대로 운영되지는 않는다. 주어진 권리도 당당히 누려야 한다.

대한민국은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4.19혁명, 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 촛불혁명 등을 거치며 민주주의를 다져왔다. 하지만 여전히 다수의 국민 가운데는 의무만을 중요시하고 권리를 찾는 데는 소극적으로 일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왕정시대의 국가통치 논리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오로지 국가권력에 복종하는 것이 올바른 국민의 자세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국가의 통치에 반하면 불순분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이다.

헌법교육이 절실하다. 학교 교육과정에서 헌법교육을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 학교는 입시를 준비하는 곳이 아니라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국민을 길러내는 곳이다. 헌법을 중요과목으로 채택하고 교육시간도 확충해야 한다.

아울러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헌법교육을 확대할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헌법이 담고 있는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제대로 알고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시민교육이다. 모든 국민이 적극적 시민이 될 때 민주주의는 꽃을 피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