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운의 우문우답] 우린 너무 급하다

논설위원

2023-09-04     금강일보

한국인의 급한 성격은 세계에 소문이 났다. 웬만한 외국인은 ‘빨리빨리’라는 한국어를 알고 있을 정도다. 무언가를 서두르고 신속하게 처리하려는 성향은 한국인의 국민성으로 굳어진 듯하다. 외국에 가보면 우리가 얼마나 빨리빨리 문화에 젖어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이런 한국인의 속도문화는 행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문제 해결에 관한 판단에서도 나타난다.

사회 전체가 놀랄 큰 사건이 발생하면 온 국민이 들끓는다. 그러면서 성급히 법과 제도를 바꾸고, 양형을 강화해 문제점을 없애야 한다는 여론을 형성한다. 하지만 한 번만 더 곱씹어 생각해보면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닌 경우도 많고, 급하게 제도를 바꾸었다가 낭패를 볼 수 있는 일도 많다. 차분히 생각해 시대착오적이지 않은지, 부작용이 없는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얼마 전 한 초등교사가 학부모로부터 심한 압박을 받고 이를 못 견뎌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로 보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교사들이 일제히 일어나 “학교 현장에서 발생하는 교권침해를 더는 방치할 수 없다.”라며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그동안 참고 참았던 교사들이 사회를 향해 함께 고민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보자고 절규하는 거다. 충분히 공감한다.

문제는 너무 앞질러 가는 사람이 많다는 거다. 교권보호를 위해(정확히는 교사 인권 보호를 위해)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해야 한다는 성급한 의견을 제시하는 이들이 많다. 심지어는 학교에서 교사에 의한 학생 체벌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강하게 제기하는 이들도 많다.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고 학생 체벌을 허용하면 교사 인권과 교권이 회복될까.

우선 ‘교사인권’과 ‘교권’의 개념을 혼동하면 안 된다. 인권은 모든 인간에게 주어지는 ‘인간으로서 존엄할 권리’이고, 교권은 교사에게 주어지는 ‘학생을 지도하고, 평가할 수 있는 법률상의 권리’이다. 즉 인권은 초법적인 권리이고, 교권은 법률상의 권리이다. 교사의 법률상의 권리를 위해 학생의 초법적 권리를 제한해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할 수 없다.

교사의 인권 보장을 위해 ‘교사인권조례’를 제정하는 일은 충분히 고려해 봄 직하지만,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라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교권 회복을 위해 교사가 정당하게 지도하고 평가하는 일을 방해하는 요소를 적극적으로 찾아내고 이를 해소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특히 교권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지휘권자나 상급기관의 태도를 바로잡는 일이 시급하다. 학부모에 의한 부당한 개입과 교권침해도 당장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하다. 또한, 어리고 미숙하다는 이유로 때려도 된다는 논리로 체벌을 부활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고의 가치가 없다. 이번 교사 사망 사건도 학생은 문제의 본질에서 떨어져 있다. 그렇지만 이번 사태는 학생을 사태의 중심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그런 이유는 그들이 가장 만만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봐야 한다. 급하게 생각하고 대처할 문제가 아니다.

국민을 공분케 하는 흉악범죄가 발생하면 사형제 부활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들끓는 것도, 급한 판단과 무관하지 않다. 흉악범이 발생하는 즉시 모두 사형하면 세상의 모든 범죄는 사라질까. 사형제만 부활하면 이 나라는 안전해지고, 모든 국민은 행복해질까.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고 결론 내리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어지는 이유다.

흉악범의 얼굴과 신상을 공개하는 일도 급한 판단이다. 범인의 얼굴과 신상을 공개하면 범죄는 없어지는가. 그들은 그게 무서워서 범죄를 포기할까. 아무 잘못도 없는 범인의 가족은 무슨 이유로 그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는 일은 옳은가. 흉악범의 얼굴과 신상 공개는 대단히 공익적 가치가 있는 일 인양 비치지만, 공공의 실익은 없다. 혐오만 키울 뿐이다. 본인은 물론 범죄와 무관한 가족과 주변인의 피해만 있을 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린 너무 급하다. 이제 좀 성숙해질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