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기 사망자 명부 공개
설영대 소속 공원이었던 송 씨
해방 직후 세부섬서 사망 확인
후손·귀환 여부는 알 수 없어
일제강점기 강제 연행의 실상이 얼마만큼 은폐됐는지는 1945년으로부터 해방 79년을 맞은 오늘까지 적잖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1923년 3월 대전에서 태어난 송 씨의 흔적이 이제야 드러난 이유다.
1910년 경술국치와 함께 한민족 최대 비극을 꼽자면 1941년 일제가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하면서 막이 오른 태평양전쟁을 빼놓을 수 없다. 셀 수 없이 많은 조선인들은 이 전쟁 때문에 태평양 군도 곳곳에 군인으로, 일본군을 뒷바라지하는 군속으로 강제 동원됐다. 어디 그뿐일까. 일본군위안부나 근로정신대로 전장과 군수공장 등지로 끌려가 혹독한 강제노동에 혹사당한 이들의 비애는 여전히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있다.
조선인에 대한 강제 동원은 군인뿐만 아니라 준병력으로서 군속, 군부, 군요원 등의 형태로 이뤄졌다. 국사편찬위원회가 발굴한 태평양전쟁기 ‘조선 출신 군인·군속 사망자 명부’를 통해 행적이 확인된 송 씨도 그런 경우다. 이 명부는 태평양전쟁 후 일본 후생노동성 사회원호국에서 작성한 것으로 2011년부터 2017년에 걸쳐 일본 국립공문서관으로 이관됐다. 국사편찬위는 2022년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고 자료의 규모와 내용을 파악하는 등 후속작업을 거친 끝에 명부를 공개했다. 명부 속 군속전몰자처리원표철에는 대전 사람 송 씨의 기록이 등장한다. 노동부대로 전장에 투입된 제225설영대(設營隊) 소속 공원(工員) 송 씨의 본적은 충남 대덕군 동면 출생으로 창씨개명을 한 이력도 있다. 그의 아내가 사망통지를 받는 이로 기재돼 있는 자료엔 사망 일시와 장소, 사유, 사후 처리 내용 등이 담겨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그는 1943년 6월 7일 공원으로 끌려가 전쟁이 끝난 후인 1945년 8월 30일 세부섬 산중에서 영양실조와 말라리아로 사망했는데 공식적으로 사망이 확인된 건 2년 뒤인 1947년 6월 20일이다. 세세한 내역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그가 일제로부터 끌려간 후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고 어떻게 죽음을 맞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해방 직후 사망한 송 씨의 유해는 고향으로 돌아왔을까. 아쉽지만 현재로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게 국사편찬위의 설명이다. 아직 그의 후손이 있는지 여부도 알 수 없다.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한 후 일제의 움직임으로 봤을 때 그들이 전장에 강제로 동원한 조선인들까지 신경썼을리 만무해서다. 그러는 사이 일제에 의한 강제동원 피해자 중 남은 생존자는 이제 1000명도 남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경험과 기억이 갈수록 흐릿해지고 있는 것이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 최근 행정안전부에 올해 국외 강제동원 피해 생존자 의료지원금 지급 현황을 정보공개 청구한 결과 전국 904명, 충청권에는 대전 23명, 세종 5명, 충남 86명, 충북 34명 등 148명의 강제동원 피해자가 생존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사편찬위 관계자는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일제는 전장에 가 있는 일본인을 귀환시키고 유해도 역시 자기네들 것만 찾으려 했다”며 “일제가 조선인들은 그런 부분에서 우선순위에서 제외하거나 외면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처리 과정을 알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