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에는 가정의달을 맞아 천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는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스며 있는 익산과 부여를 찾아 문학산책 하고자 한다.
◆ 국적과 신분을 뛰어넘는 러브스토리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얼러 두고/ 서동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가다”
이 신라 향가 서동요의 주인공이 백제 30대 왕 무왕이다. 서동요가 실려 있는 삼국유사 기이편의 중심인 전반부는 가난했지만, 용의 아들로 태어나 슬기로웠던 백제 서동이 미모인 선화공주와 국적과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이루고 왕에까지 올라 행복하게 살았다는 세기적인 러브스토리가 서사를 이루고 후반부는 미륵사 연기 설화로 돼 있다.
풍부한 비하인드 스토리는 사랑 이야기를 더 풍부하고 애절하게 하듯 이들의 이야기 또한 1400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 사이에 많은 관심사이며 생생한 기억으로 회자하고 있다.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 이야기는 드라마와 뮤지컬로 재현되어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로 큰 감동을 줬고 학계에서도 이들에 대한 사회의 높은 관심을 반영이라도 하듯 서동과 관련된 미륵사지 유적과 쌍릉 등을 발굴해 새로운 학설로 우리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 사례가 2009년도 미륵사지석탑에서 출토된 금제사리봉안기의 발견으로, 백제 최고의 품계인 좌평 사택적덕의 딸인 사택왕후가 무왕의 부인이라는 학설이다.
그런데 금제사리봉안기는 서쪽에 있는 미륵사지석탑에서만 나온 것으로, 지금은 사라지고 흔적만 남아 있는 중앙의 목탑에 선화공주의 기록이 담긴 또 다른 금제사리봉안기가 따로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2017년 쌍릉의 발굴조사를 통해 대왕묘가 무왕의 무덤이라고 밝혀졌다. 그럼 무왕의 왕비릉으로 추정되는 소왕묘는 누구의 것일까?
금제사리봉안기 발견 이후 무왕의 왕비인 사택왕후의 것이라는 것이 정설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무덤에서 나온 ‘금동밑동쇠’와 ‘금동널꾸미개’ 같은 장신구를 비교해 본 결과, 왕비의 무덤인 소왕묘가 무왕의 대왕묘보다 더 먼저 만들어졌음이 밝혀졌다. 그런데 사택왕후는 무왕보다 1년 뒤인 642년에 죽었다.
따라서 소왕묘는 사택왕후의 묘가 아니며 선화공주가 그 주인공일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 사택적덕의 딸은 무왕의 여러 왕비 중 한 사람으로 추정된다.
한편 서동요는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을 전래 민요형식으로 부르다가 동요로 정착한 유일한 노래이다. 그만큼 다양한 층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서동은 한국 역사상 처음 등장한 음유시인, 희대의 로맨티스트라며 호평하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서동은 선화공주를 음해하는 동요를 아이들이 부르게 해서 사랑을 쟁취했다는 점에서 명예심을 저버린 채 사랑하는 사람에게 비겁한 행위를 한 나쁜 사람이며, 서동요는 최초로 어린이들의 동심을 멍들게 한 동요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또 서동요는 가짜뉴스의 전형을 보여 주는 것이며 ‘나무꾼과 선녀’와 같이 성인지가 둔감한 은폐된 폭력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이어령이 갈파한 것처럼 서동이 명예심이나 기사도 정신이 없이 한없이 치사스럽고 비굴하고 나약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영웅의 세계가 아닌 성자들의 세계로 구애하는 방법을 택했기 때문이다. 서동요는 무협적인 기사도 정신 속에 뿌리를 박고 있는 영웅들의 사랑이 아니라 평화 속에 뿌리를 둔 비폭력의 점잖은 성자의 로맨스이다.
◆ 익산 vs 부여, 서동요 기원지 원조 논쟁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지금도 계속 생산되고 회자되는 가운데 익산과 부여에서는 서로 서동요의 기원지라며 원조 논쟁을 벌이고 있다.
① 익산은 금강을 경계로 해 백제의 고도인 충남 부여와 접해있다. 따라서 백제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고 백제의 향기가 진하게 배어 있는 곳이다. 그리고 서동과 선화공주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익산 곳곳에 묻어 있다.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97번지 일대에 위치한 미륵사지와 미륵사지석탑, 익산시 석왕동 산55번지에 위치한 쌍릉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금제사리봉안기의 발굴로 한때 혼란에 빠지기도 했으나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와의 사랑 이야기가 아직도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익산시 금마면 서고도리 373-14번지 일원은 서동생가터와 마룡지 유적 정비 사업이 한창이다. 삼국유사에서 서동이 홀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마를 캐고 후에 금 다섯 덩어리를 캔 오금산 남쪽 기슭에 ‘용못’, ‘마룡지’라는 연못이 있다. 서동의 어릴 적 이름인 맛동과 용의 연못을 합쳐 마룡지라 불렀다고 한다. 그 동쪽은 주춧돌과 백제 시대 기와 조각이 많이 출토되어 서동의 생가터로 추정하고 복원 예정이며, 마룡지 북쪽에는 서동이 물을 길었던 ‘용샘’이 있다.
또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에 위치한 사자사는 무왕과 선화비가 이곳으로 행차할 때 용화산 아래 연못에서 미륵삼존불이 나타나 미륵사를 창건하였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익산에서는 2004년부터 서동축제를 열고 있으며, 올해는 이달 3일부터 6일까지 ‘무왕의 백제 부흥운동’을 주제로 익산 서동공원 일원에서 ‘2024 익산 서동축제’를 개최했다.
② 부여는 백제의 수도로 백제문화유적 답사 1번지이다. 부여는 현재까지도 백제의 전성기 문화의 화려함과 패망의 아픔이 함께 공존한다. 생각할수록 가슴이 시리고 숙연해지는 곳이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궁남로52에 위치한 궁남지는 서동의 전설을 품고 서동과 선화공주의 애틋한 사랑을 전한다. 백제 무왕이 사랑하는 선화비를 위해 궁궐 남쪽에 별궁 연못을 판 것이 다름 아닌 궁남지이다. 도교 경전에 나오는 방장선산을 본떠 긴 수로를 통해 물을 끌어들여 버드나무를 심고 연못에 섬을 만들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정원으로 연못 가운데는 서로 사랑을 속삭였을 포룡정이 있고, 그 정자까지 나무다리가 놓여 있다. 뛰어난 백제의 조경기술을 엿볼 수 있다.
궁남지는 계절마다 다른 느낌이 연출되는 아름다운 정원으로 연꽃과 야생화가 피는 7월이면 정원축제와 서동 연꽃축제가 열린다. 올해는 오는 7월 5일부터 7일까지 ‘사랑의 연, 서동과 선화의 만남’을 주제로 부여 서동공원과 궁남지 일원에서 ‘제22회 부여 서동 연꽃축제’를 개최한다.
궁남지 근처 화지산 자락에는 서동요의 내력과 내용을 밝힌 ‘서동요비’가 진달래꽃으로 에워싸여 있다. 그리고 서동요비에서 궁남지 대각선 저 멀리에 서동과 선화가 포옹하고 있는 서동요 상징조형물에 있는데 그 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다정하고 사랑스럽다.
◆ 서동요, 문학적 접근 필요
서동요는 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라는 역사적 인물의 사랑 이야기지만 이를 전적으로 역사나 과학적 고증으로 이해하려는 것보다는 역사적 사실의 바탕 위에 상상력을 동원해 문학적으로 접근해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문학과 역사, 문학과 과학의 차이를 인식하고 서동요를 문학적 범주의 전설과 설화로 접근하면 내용이 더 풍부해지고 논란은 훨씬 줄어든다. 서동요의 기원이 부여냐 익산이냐 하는 문제도 저절로 해결된다. 전설과 설화를 포함하는 문학이 역사와 과학을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그것에 전적으로 따를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익산에도 부여에도 전설상의 증거물이 나름대로 있으니 다른 전설들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비록 과학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그 증거물을 바탕으로 그 지역에서는 그것을 믿고 신성시하며 현대적인 콘텐츠를 개발하여 축제로 승화시키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각 지역의 축제를 보며 그것의 참과 거짓의 진실성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특성에 맞는 스토리텔링을 보고 즐기면 되는 것이다.
익산과 부여 두 지역 모두 서동축제뿐만 아니라 서동요 테마파크를 조성해 서동요 역사관광지로 활용하고 있다. 한 번쯤 들러서 주변을 산책하며 사랑하는 남녀 사이에는 국적이나 신분 그 어떠한 장벽도 있을 수 없다는 서동요가 들려주는 문학적 메시지에 공감하면서 각자 서동과 선화공주가 되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