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단지 청소에 폐기물 정리까지
하루걸음만 평균 2만 5000보 남짓
1년도 채 못 넘기는 낡은 운동화
“고된 일 참아도… 민원은 힘들어”
“예초기 작업하다가 기계에 흠집이 생겨서 짝꿍(동료)이랑 있는 돈 없는 돈 모아서 45만 원을 물어줬어요. 그 뒤로는 낫으로 일하라고…. 화나고 당황스럽고 그게 불과 1년 전이에요.”
주차장·차량 관리, 화단 청소, 잡초 제거, 음식물 수거함 물청소, 폐기물 정리…. 아파트 경비근로자가 하루에 도맡는 업무다. 그나마 추려서 정리한 정도다. 경비근로자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곳곳에서 나오지만 동행 취재를 통해 마주한 이들의 하루는 알려진 것보다 더욱 고되기만 하다. 나름 갖춰진 경비실이 있음에도 경비근로자에겐 앉을 틈이 없었고 작업을 하면서도 혹여 민원이 들어올까 걱정했다. 말만 경비근로자일 뿐 실질적인 업무를 보면 여러 직업군이 걸터있다.
◆ 주차민원에도 잘릴라…
지난 4일 새벽 5시 40분. 준비 아닌 준비를 마치고 잰걸음으로 버스정류장을 향했다. 버스 탑승 후 휴대전화를 보니 이제 겨우 6시. 대학수학능력시험 취재 이후로 이르게 출근하는 이유는 아파트 경비근로자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생각해보니 아파트 경비근로자의 하루는 참 길다. 오전 6시 전날 근무자와 교대하고 이튿날 같은 시간까지 꼬박 24시간 일한다. 생각을 하다 도착한 대전 서구의 한 아파트. 그곳에서 예순넷 경비근로자 김 씨를 만났다.
깔끔하게 정돈된 백발의 머리, 단정한 경비복 차림의 그는 인자한 말투로 반기며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다. 본격적인 업무는 입주민이 외출하기 전 지하주차장 내 이면주차된 차량의 사이드브레이크 여부를 확인하는 거다. 출근을 해야 해 모두가 날카로운 평일에는 이웃간 다툼이 벌어질 수 있어 이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란다. 그는 자신이 관리하는 세대의 차량을 확인하고 종이에 차량번호를 적었다.
김 씨는 “그나마 토요일이라 괜찮은데 평일 입주민도 출근해야 해 보통 오전 8시쯤 이면주차한 차량에 대해 이동 주차를 안내한다. 간혹 말다툼도 발생하는데 함부로 개입하다 되레 민원이 들어오고 잘릴 수 있어서 사전에 꼼꼼히 확인해 다툼을 막는다”라고 말했다.
◆ 하루 2만 5000보
시곗바늘이 7을 가리킬 무렵 경비실로 향했던 김 씨가 목장갑을 끼고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챙겨나왔다. 그는 눈에 보이는 담배꽁초뿐만 아니라 보도블록 사이사이에 박힌 흙먼지와 생을 다한 꽃잎도 쓸었다. 놀이터 벤치에는 양심없는 누군가 버리고 간 과자 봉투와 빈 음료병이 있다. 송홧가루 탓에 마스크를 썼지만 이내 땀이 차 소용 없다.
김 씨는 “떨어진 꽃씨와 꽃잎도 애를 먹이지만 낙엽이 제일 힘들다. 가을이 아니어도 유독 바람이 심한 날에는 낙엽 때문에 외부에서 5~6시간은 내리 치워야 한다”라며 땀을 닦았다. 그러면서 “지난달 아파트 단지 빗물받이 청소를 이틀 동안 했다. 뚜껑이 정말 무거운 데다 빗물받이 수가 상당히 많아 사실 이틀도 모자랐다. 작업이 끝나고서 거울을 보니 입술이 부르트기도 했다”라고 덧붙였다. 빗물받이 뚜껑을 있는 힘껏 잡아봤지만 쉽게 들어올려지지 않았다.
그의 허리에 걸린 작은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무엇이 들었는지 묻자 휴대전화가 들어있다고 했다. 지금처럼 경비실과 거리가 있는 지하·지상주차장이나 놀이터, 화단 등을 청소하고 있을 때 걸려올 민원 전화 때문이다. 일을 하면서도 또다른 일로 인한 전화를 걱정해야 했다.
그런 김 씨의 운동화 수명은 1년 남짓. 오전근무 중 움직이는 시간만 하루 평균 4시간에 달하고 걸음 수는 2만 5000보나 되니 1년도 못 채우고 다 닳아버린다. 김 씨 만큼이나 운동화도 고된 노동을 하고 있다.
◆ 쓰레기 대란 여전
“재활용품 수거 차량인데 왜이렇게 일찍 왔지?”
모자와 마스크를 내려놓고 목을 축이던 김 씨는 평소보다 일찍 온 수거 차량에 난감한 듯 창밖을 바라보다 나섰다. 당황할 틈도 없이 그는 플라스틱이 담긴 통을 수거하기 쉬운 위치로 끌었다 놨다. 300세대가 버리는 폐기물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수거 차량의 폐기물 통은 금세 채워졌다. 특히 빈 박스의 양이 상당했는데 이따금 상자에 붙어있는 테이프(비닐)를 별도로 떼어내는 것도 김 씨의 몫이다. 박스가 날아가지 않게 내부에 전단지나 작은 상자를 넣어 고정시켰다. 전단지나 빈 박스가 화단으로 날려가면 그것도 역시 민원이 된다.
그는 “가져가는 쓰레기만 2~3톤 된다. 눈에 보이는 대로 즉시 정리해야 한다. 스티로폼 박스도 부피를 줄이기 위해 부숴서 모아둔다. 음식물수거함도 날이 더워지면 냄새가 심해져서 날마다 물청소 해야 한다”라고 설명하며 가득 찬 음식물수거함 위에 돌을 올려 표시해뒀다.
이웃이 한 데 모여사는 공동주택이지만 단지 내 무단투기도 적잖다. 그의 경비실 한 켠에는 폐기물스티커 없는 아기용품이, 의류수거함에는 부피가 큰 방석 등이 버려져 있었다.
◆ 휴게시설 있어도
바쁜 틈이 지났다. 시간은 오전 9시 30분. 한참을 따라다닌 터라 기자 역시 다리가 상당히 아팠다. 지친 기색이 다분한 기자에게 커피 한 잔을 선뜻 내어준 김 씨는 경비실을 소개했다. 그의 경비실은 가늠하기에도 다른 아파트의 경비실과 휴게실에 비하면 넓은 편이었다. 침대가 있었고 경비실 내부에 화장실도 있었다. 또 냉난방시설, 냉장고, 전자레인지 등도 제법 새것으로 교체돼 있었다.
김 씨는 “이 정도면 상당히 잘 돼 있는 것이다. 이전에 근무하던 곳은 경비실이 1평(3.3㎡) 정도였다. 다리도 뻗기 힘든 곳에서 잠을 자며 익일 근무를 해야했다. 도저히 견디지 못할 정도였다”라며 “이 일을 한 지 7년 됐다. 그 사이 예초기 문제로 배상도 했고 택배를 직접 집까지 가져다 주기도 했다. 입주민 개인의 집에서 보일러를 고쳐주는 일도 했다. 불과 몇 년 전 일들이다. 아파트가 등장한 지는 오래됐지만 경비근로자의 처우는 변함없다. 관련 조례가 나오고 있지만 아직은 열악한 곳이 많을 거다. 대덕구 조례로 물꼬를 텄으니 단계적으로 확장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연신 경비실이 잘 갖춰져 있어 괜찮다고 말하던 그는 이날 오전 경비실에 앉아있지 못했다. 일이 많아서였다. 기자는 힘든데도 이 일을 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는 “정신적으로 힘든 건 분명하지만 나이 먹고 일할 수 있다는 걸 위안으로 삼고 있다”라고 말했다.
글·사진=김지현 기자 kjh0110@gg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