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발발 74년이 지났지만
충청권 납북피해자 2만명 넘어
北 고압적 태도에 문제해결 난항
정부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생사확인·명예회복 논의 전무
혈육의 생사조차 몰라 까맣게 탄 가슴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광복과 분단, 전쟁과 교류에 이르는 긴 세월 생사확인은커녕 명예회복에 대한 논의조차 전무한 납북자와 그 가족들이 그렇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74년이 지났지만 전국적으로 10만 명, 충청권에서만 2만 명이 넘는 납북자들의 생사 여부는 지금까지도 감감무소식이다.
생이별한 혈육을 다시 만나게 하는 인륜지사는 이념과 체제 그 이전의 문제다. 어떤 전제조건도 필요없다. 그러나 납북자 문제만 놓고 보면 사정이 참 딱하다. 풀어야 한다는 당위성은 있지만 실제로는 쉽지 않은 형편이 계속되고 있어서다. 당위와 현실이 충돌이 이어지는 동안 10만 명에 가까운 납북자들의 생사 확인과 송환 문제는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 국무총리 소속 6·25전쟁납북진상규명위원회가 발간한 6·25전쟁 납북피해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납북 추정 인원만 전국적으로 9만 5000여 명이다.
충청권에서만 2만 2971명이 납북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 충북에서는 모두 1만 3775명이 납북된 것으로 파악된다. 영동군 등지를 통해 낙동강 전선으로 바로 연결되는 지리적 특성으로 북한에 의한 의용군 징집, 강제 노역 등의 피해가 많아 그만큼 납북된 이들이 많았을 것이라는 게 6·25전쟁납북진상규명위의 진단이다.
대전과 충남의 납북 피해 규모도 상당하다. 한국전쟁 중 대전형무소 학살이나 대전 프란체스코 수도원 학살, 서천등기소 학살 등 전쟁 중 북한군에 의한 인적 피해가 집중됐던 대전과 충남에선 9196명이 납북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대전과 충남은 1951년 이후에도 343명이 납북된 것으로 짐작되는데 대부분 빨치산에 의한 납치로 보인다는 게 6·25전쟁납북진상규명위의 판단이다.
무엇보다 특기할만한 대목은 충청권 납북 피해자의 96.8%(2만 2249명)가 청년과 중년층이라는 점이다. 북한이 전쟁에 필요한 인적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청년과 중년층을 대거 납치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그후 74년이 흘렀다. 누가 뭐래도 납북자들과 그 가족은 한국전쟁과 체제 대결의 최대 희생양이다. 그러나 납북자의 생사 확인이나 송환, 가족과의 상봉 등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입북자는 있어도 납북자는 없다’는 북한의 고압적 태도에 문제 해결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납북자가족모임 등 관련 단체들이 생사 확인이나 송환 등의 대책을 요구해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정부의 책임도 크다. 그간 대북 관계 등을 고려해 정부가 북한에 납북자 문제를 능동적으로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나를 잊지 말아 달라’는 납북자들의 절규와 가족들의 통곡은 시절과 함께 사그라들고 있다. 납치돼 강제로 고향을 떠난 이나 남은 가족의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아서다. 이들을 위해 눈물 흘릴 사람조차 없는 시절이 머지않았다는 얘기다.
이성의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은 “가장 근본적인 걸림돌은 남북회담에서 납북자 얘기만 꺼내면 그런 사람들 없다는 북한의 태도이고 그 다음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는 우리 정부”라며 “나도 그렇지만 2세대 납북자 가족들이 다들 나이 80 넘어가면서 이제는 앞으로 이런 얘기할 사람들도 없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이 이사장은 “오는 11월 유엔(UN)에서 북한의 보편적 정례 인권 검토가 있는데 정부가 못하니 우리라도 나서 납북자 문제 해결을 촉구해야지 별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