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그날의 악몽, 저지대 위치해 쏟아붓는 장맛비에 28세대 침수 1명 사망. 그후 모래주머니·양수기 설치했지만 임시방편, 올해 역대급 장마 예고에 2020년 떠올라 불안한 주민들.
최근 기후변화로 게릴리성 집중호우가 반복되자 침수로 인한 공포가 커지고 있다. 앞서 대전에서는 저지대에 위치한 아파트가 침수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단기간에 많은 양의 비를 뿌리는 집중호우를 미처 대비할 틈도 없이 직면한 사고였다.
#1. 그날
지난 2020년 7월 30일 대전 서구 정림동 코스모스아파트. 여느 장마철과 다름없이 온종일 비가 내리는 평범한 날이었다. 모두가 잠든 새벽 급작스럽게 불어난 물이 집안으로 들이닥치기 전까지 말이다. 빗물은 어두컴컴한 집안으로 삽시간에 쏟아져 들어왔다. 순식간에 아파트 단지는 물바다로 변했다. 빗물은 인근 산에서 무너진 토사와 섞이며 흙탕물이 됐다. 상가 건물은 입구가 보이지 않았고 삽시간에 다량으로 쏟아진 비는 웬만한 성인 여성의 키를 넘길 정도였다.
저지대에 위치한 아파트 특성으로 인해 빗물은 3층 높이까지 차올랐다. 구조를 요청하는 다급하고 간절한 목소리가 곳곳서 터졌고 구조대원은 고립된 사람을 찾아 구조보트에 태웠다. 이날 쏟아진 폭우는 시간당 최대 102㎜로 코스모스아파트 1층 28세대가 물에 잠겨 1명이 숨졌다. 56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차량 78대가 침수됐다.
이후 코스모스아파트에는 양수기 4대가 설치됐고 빗물 유입을 막기 위한 모래주머니 수십 포대도 반지층 창가에 차곡차곡 쌓였다. 몇해 전 수마의 위력을 직접 겪은 이들의 공포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할 수 있다. 물론 2020년 7월 이후 침수 피해는 없었지만 주민의 마음엔 그날이 선명했다. 코스모스아파트 주민과 인근 상인은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날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시를 떠올리던 한 주민은 “침수 이후에는 생활을 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집안에 있던 물건을 나르고, 흙탕물을 털어내고 난리도 아니었다. 시간은 흘렀지만 장마철만 되면 마음이 심란하다”라고 털어놨다.
#2. 현재
24일 오전 10시 코스모스아파트. 장마가 임박하자 날은 답답할 정도로 후텁지근했다. 단지에는 커다란 밀짚모자를 쓰고 사과를 판매하는 상인과 양산을 쓴 채 외출하는 입주민 몇몇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더운 듯 얇은 티셔츠를 걸치고 단지를 산책하는 사람부터 천천히 굴러가는 자전거 바퀴까지. 멀리서 바라보면 과거 침수 피해가 있었던 곳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평화롭고 고요했다. 그러나 아파트 정문에서 아래로 내려가듯 몇 걸음만 옮기면 분위기는 달라진다. 침수를 막기 위한 설비가 곳곳에 설치돼 있기 때문이다.
침수 이후 아파트에는 양수기가 들어섰다. 양수기와 연결된 커다란 호스 4개가 높다란 아파트 담장 위로 향하고 있었다. 아파트 담장 밖으로 차량이 세워져 있는 게 보였다.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호스의 방향을 어림잡아 얼마만큼 저지대에 위치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주민 A(60·여) 씨는 “그날 침수가 발생한 이후에 양수기가 설치됐다. 일상으로 돌아가기까지 오래 걸렸는데 양수기라도 있어 다행이다”라며 한숨을 돌렸다.
반지층 창가에는 이미 모래주머니가 옹벽처럼 쌓였다. 한 주민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싶어 며칠 전 쌓아둔 것이라고 했다. 설명을 해주는 주민의 옆으로 모래주머니 몇 포대가 더 보였다. 나름의 설비 덕분인지 지난 몇 년 동안 별다른 사고 없이 무사히 여름을 보냈다.
#3. 우려
“비가 많이 온다고 하니 불안한데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지대가 낮아서 하수구까지 물이 잘 안 흘러요. 걱정이죠.”
'수마'라면 학을 떼는 이들에게 양수기도 모래주머니도 임시방편에 불과해 주민의 우려는 여전하다. 대전 서구는 정림동 인근을 대상으로 420억 원을 투입해 재해위험개선지구 정비사업을 진행, 하수관로를 정비하고 배수 펌프장, 하수 저류시설을 설치하기로 했지만 해당 사업은 내년을 목표로 한다. 더욱이 올해는 도깨비 장마로 불릴 만큼 역대급 폭우가 예고돼 주민의 불안을 가중시킨다.
이런 가운데 단지 내 일부 구간은 침수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코스모스아파트는 인근 아파트나 도로보다 저지대에 위치해 있고, 단지 내 지반 자체가 고르지 못한 곳도 있어 상가 앞은 하수구까지 물길이 닿지 않는다. 아파트 상가건물 앞에는 빗물을 받아내는 커다란 하수구가 있는데 상가에서 흘러나온 물조차 받아내지 못한다. 하수구의 높이가 땅의 표면보다 높아서다.
아파트 상인 B 씨는 “원래도 낮은데 이 구간 지대가 더 낮아서 하수구까지 물이 흐르지 않는다. 물이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갑천과 인접해 있고 산에서 흘러오는 빗물로 인해 침수 위험이 크다. 그런데 인근 산을 개간해 농사를 짓는 사람도 있고, 아파트와 인접해 양수기가 설치돼 있어 우기에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올 장마가 역대급이라고 하는데 현재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우리같은 서민이 비싼 임대료를 내며 갈 곳은 없다. 불안해도 그냥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글·사진=김지현 기자 kjh0110@gg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