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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이이김김] 망망대해를 누비는 낙지잡이 현장

2025. 02. 09 by 김동은 기자

우리 사회엔 다양한 직업이 존재한다. 그중 극한의 직업이라 손꼽히는 어업, 어업은 웃돈을 줘도 인부 구하기가 힘들 정도라고 하는데 도대체 얼마나 힘들기에 외국인 근로자조차도 꺼려할까. 그래서 어민들의 삶을 몸소 체험하기 위해 망망대해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파고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낙지잡이 현장에 직접 나섰다.

▲ 어구명이 표시된 부표를 잡아 올리려 하고 있다.
▲ 어구명이 표시된 부표를 잡아 올리려 하고 있다.

 어업인들의 시간은 곧 ‘생계’ 
 제일 무서운 건 그날의 수확량 
“‘뱃놈’은 바다에서 살아야 혀”

‘따따 따다다다!’ 알람소리가 진동과 함께 요동을 친다. 5분만 더 자고 싶은 간절함, 다시 잠들었다 깜짝 놀라 깨어보니 새벽 4시 칠흑 같이 어두운 새벽, 여기는 충남 태안군에 위치한 작은 어촌마을 황포항이다. 선착장에선 새벽을 깨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빨리 빨리” 재촉하는 선장님의 목소리다. 썰물이 시작되기 전에 바다로 나가야 한다. 조업하는 어업인들에게 시간은 생계와 직결된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두꺼운 외투와 털모자 등으로 중무장한 채 배에 올랐다.

이내 배는 만선의 부푼 꿈을 안고 우렁찬 엔진소리를 내며 겨울 바다로 향한다. 겨울바람에 살이 에이고 뼛속까지 시리지만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몸부터 녹여본다. 그러는 사이 배는 한참을 내달린다.

40분 정도가 지났을 때쯤 미리 통발을 던져둔 지점, 어구 표시가 달린 부표에 도착했다. 이제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된다. 선장님의 신호에 따라 선원 4명과 함께 각자의 자리에 위치한다. 먼저 고참 선원이 부표를 올리고 줄 당기는 기계에 줄을 감자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에 달린 통발이 하나씩 올라오기 시작한다. 걷어 올린 통발에서 낙지를 꺼내면 다시 미끼(작은돌게)를 넣고 미끼 넣은 통발은 다른 선원이 배 선수 안쪽에 차곡차곡 쌓아 놓는다. 그리고 쌓인 통발은 다시 바다로 뿌려진다. 이렇게 한 줄을 작업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20분. 바닷속 통발의 갯수는 5000개, 한 줄에 적게는 80개, 많게는 100개의 통발이 매달려 있다. 최소 50줄. 그날 그날 바다 물때에 맞춰 작업 목표가 정해지는데 하루 평균 24줄 작업을 한다.

바다로 통발을 던지고 있다.
바다로 통발을 던지고 있다.
기자(오른쪽)가 직접 미끼를 통발에 넣고 있다.
기자(오른쪽)가 직접 미끼를 통발에 넣고 있다.
낙지통발을 배 위로 올리는 있다.
낙지통발을 배 위로 올리는 있다.

이날 나는 통발에 미끼를 넣는 작업을 맡았다. 어느덧 3시간의 작업시간이 흘렀다. 두겹으로 착용한 장갑 속에서 손은 퉁퉁 붓고 열감이 느껴진다. 작업은 끊임없이 계속된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배가 파도에 의해 ‘이륙하고 착륙했다’를 반복한다. 새벽에는 잔잔했던 바다가 갑자기 출렁이기 시작한다. 흔들리는 배에서 중심 잡기란 쉽지가 않다. 무릎과 허리가 끊어지기 직전이다. 여기에 통발에 묻은 뻘과 비릿한 냄새로 인해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한다. 코를 막고 최대한 버티면서 작업을 이어갔다. 고개를 들고 출렁이는 바다를 바라보면 몸에 이상 반응이 온다. 예상대로 또 다른 복병, 배멀미가 시작됐다.

온 마음을 다해 버티면서 작업 순서도 바꿔가며 통발을 쌓고 나니 “오전 조업 끝! 밥 먹읍시다.” 선장님이 준비한 아침 겸 점심이다. 갓 잡은 낙지 5마리, 노래미, 김치, 고추장만 넣고 끓인 매운탕, 그리고 고봉밥. ‘먹는건 누구보다 잘하는데….’ 도저히 먹을 자신이 없어 밥도 거르고 선원들이 밥 먹는 동안 누워있기로 했다. 금새 작업 시작종이 울린다. 10분도 채 되지 않았다. 말없이 밥만 먹은 이유가 있었다. 몽롱한 정신으로 바닥을 기다시피 배 선수 쪽으로 다시 향했다. 또 다시 낙지를 품은 통발이 올라온다. 멀미약 하나를 더 먹고 버텨본다. 반복해서 줄을 당기고 통발 올리고, 미끼 넣고, 쌓고, 다시 바다로 던져지고, 어느덧 해는 머리 위를 지나 옆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그때 선장님의 한마디 “4줄만 더 보고 갑시다.”

충남 태안군 서해바다에서 잡은 낙지.
충남 태안군 서해바다에서 잡은 낙지.

이때부터 모든 선원들의 힘듦이 사라지는 듯했다. 끝이 보인다는데서 오는 기쁨이 아닐까. 온 힘을 다해 다시 반복된 네 번의 작업, 오후 3시가 돼서야 조업은 마무리됐다. 선장님의 표정을 보니 수확량은 나빠 보이지 않았다. 바다 위에서는 매 순간 위험이 따르지만 ‘고기 안 잡히는 게 제일 무섭쥬’ 라고 한 선장님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느껴진다. 그렇게 수확한 낙지는 위판장으로 넘겨지고 나서야 12시간의 낙지 조업은 완전히 끝이 난다. 육지에 도착했지만 출렁임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이렇게 힘들 줄이야.’ 힘들지 않느냐는 물음에 선장님은 “고되고 힘들지만 ‘뱃놈’은 바다가 아니면 안뎌.”라고 웃음을 보인다. 평생 바다와 함께 살아가겠다는 그는 내일도 만선을 꿈꾸며 다시 바다로 향할 채비를 한다.

김동은 기자 yarijjang@ggilbo.com

기자가 빨간 그물망에 담긴 낙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기자가 빨간 그물망에 담긴 낙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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