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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그 노래] 연탄 한 장

2017. 12. 09 by 차철호

 

오랜만에 시집을 꺼내 든다. 

1994년에 나온 안도현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집의 첫 시는 이렇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1연 3행 30자로 이뤄진 이 시의 제목은 
'연탄 한 장'? 
아니다. '너에게 묻는다'이다.

여백 많은 첫 페이지를 넘기면
이어서 또 연탄에 관한 시가 나온다. 

'연탄 한 장'.


#1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이렇게 시작하면서, 삶이란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 되는 것,이라 한 시인은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이라며, 나 자신보다 타인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사회를 위해 살기를 '권고'한다.

'너에게 묻는다' 연작시처럼 보인다. 시인은 훗날 어느 인터뷰에서 "나 자신에게 던진 메시지"라고 밝힌 바 있다. 시인으로 살며 교사로 교수로, 한 때 해직교사로 살았던 시인의 삶을 생각하면 얼추 가늠이 된다.

 

 

#2 

시가 나온 지 10여 년이 지난 2004년께 노래로 만들어진 이 시를 들었다. 원래 시와 노래는 한몸이었다고 했나. 한참 잊고 지낸 시의 메시지를 다시 들었다. 물론 원 시와 노랫말은 좀 다르지만 그 메시지 그대로, 혹은 더 크게 오래 전 전율이 다시 밀려왔다.

안치환 8집 '외침'의 마지막 트랙으로 실린 '연탄 한 장'. 안도현 시 / 강종철 곡 / 안치환 노래.


   

삶이란 나 아닌 다른이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싸늘해지는 가을녘에서 이듬해 봄 눈 녹을 때까지.  해야 할 일이 그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고 있다는 듯이,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히 남는 게 두려워,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려하지 못했나보다.  하지만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아침에 나 아닌 다른 이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나는 만들고 싶다.

 

#3

어둡던 천변 퇴근길,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면서 이 노래를 많이 불렀었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힘들 때면 더더욱 그랬었다. 나는 나의 안위만을 좇으며 살고 있지 않은가, 나에게 물었다.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아침에 나 아닌 다른 이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나는 만들고 있느냐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우리'를 위해 사는 것이 나를 위해 사는 것이고, '우리'가 살아야 내가 살아나는 것. 그 쉽고도 단순한 진리를 잊고 사는 건 아닐까 오늘도 물음을 던진다.


#4

시인의 또다른 시집 '바닷가우체국'에는 이런 시가 있다.

겨울편지

당신,
저 강을 건너가야 한다면
나, 얼음장이 되어 엎드리지요

얼음장 속에 물고기의 길이 뜨겁게 흐르는 것처럼
내 마음속에는 당신이 출렁이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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