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소 등 안전망 부실 대처 못하고 침묵 일쑤

미등록 노동자 피해 더 커 ··· 사회적 대책 마련 급선무

다문화가정이 더 이상 낯설 지 않게 되면서 정부에서도 교육, 복지 등 다양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주로 결혼이주여성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이주 여성 노동자를 보호하는 정책은 쉬 눈에 띄지 않는다. 이들에 대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그래서 높다.

사회적 약자인 이주 여성 노동자들이 성폭행 등 흉폭한 범죄에 노출됐을 경우 이들을 보호하고 치유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더욱 절실하다.

◆성 노리개가 된 이주 여성노동자
국가인권위원회의 이주여성노동자 인권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업장 내 성폭행 경험에 대해 12.1%가 ‘있다’고 조사됐다.

성폭행 경험자 중 30.4%는 신체를 만지는 성폭력을 당했으며, 55.6%가 한국인 직장상사에 의해 성폭력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성폭행 시간과 장소는 55%가 퇴근시간 이후에, 56.3%가 작업장 내에서 이뤄졌다.

보다 충격적인 사실은 성폭행을 당한 이주 여성 노동자들의 38.9%가 아무런 대처 없이 혼자서 참고 있다는 대목이다.

성폭행을 당한 여성 중 66.7%는 보상을 받지 못했다. 70.6%는 가해자가 법적으로 처벌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고 답한 부분에서 알고도 신고조차 못하는 이들의 심정이 읽혀진다.

우려되는 것은 이들이 강간이나 강간에 준하는 성폭행을 당하는 것만 성폭력인 줄 알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탓에 성희롱에 대해서는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울러 성폭력 피해여성의 72.2%는 성폭력 피해자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상담소나 피난처가 필요
하다고 했으며, 33.3%가 성폭력 예방교육을 통해 도움을 받고자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에 대한 사회 안전망이 얼마나 부실한 지에 대한 방증이다.

◆절실한 성폭력 피해 여성 대책
대전 이주노동자연대 등 복수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성폭행을 당해도 이주 여성들에게 저항할 힘이 없다는 것이다. 또 의사소통이 어렵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사후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등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

대부분의 한국 여성 피해자들과 같이 성폭행 사건에 대한 조사가 길고 수치스러움은 말할 것도 없으며, 문화가 다른 이주 여성들이 그 과정 안에서 더 큰 상처를 받아 중도에 포기하는 일도 많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특히 미등록 노동자는 직장 상사가 가해자일 경우 신고 위협에 처해 성폭행 사실을 숨겨야 하는 불편한 진실도 들린다.

서민식 대전이주노동자연대 대표는 “이러한 피해가 나타나고 있는 것은 법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고 전제한 뒤 “이주노동자들을 대놓고 차별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차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고용업주를 비롯한 시민들의 인식이 바뀌기 위해서는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가 일어날 경우 사법기관이 먼저 공정한 잣대를 적용해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전 이주여성 지원센터 관계자는 “성폭력 특별법에 의하면 외국인여성도 성폭력 특별법의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추방으로 종결되는 법은 이주여성에게는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라며 “성폭행으로부터 이주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불법체류자라 할지라도 일단 성폭력의 피해자임이 확인될 경우 가해자로부터의 법적인 배상과 함께 한국에서 최소한 고용허가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근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지원 기자 jiwon401@ggilbo.com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