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민원 반복 멍드는 공직사회]

지자체, 홈페이지 실명 비공개 전환
행안부, 악성 민원 대응 지침 개정
부족한 공무원… 자리 채우다 떠나는 신규
현장선 “인력 충원, 존중받는 분위기 맞물려 개선”

▲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전국공무원노동조합과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 총연맹 관계자 등이 악성 민원 희생자 추모 공무원 노동자 대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1. 지난달 12일 오후 4시경 세종 조치원읍 행정복지센터에서 공무원 2명과 사회복무요원 1명 등 3명이 40대 민원인 A 씨에게 습격당했다. A 씨는 담당 공무원과 기초생활수급자 신청 상담을 하던 중 ‘보유한 재산이 많아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기 어려울 것 같다’라는 말에 격분해 흉기 난동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2. 불과 2주도 채 되지 않아 충남 논산시청에서도 흉기 난동을 부린 50대 남성이 특수공무방해 치상,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됐다. 경찰에 따르면 B(55) 씨는 지난달 24일 오전 8시경 시청 비서실을 찾아 흉기 난동을 부리다 50대 경찰을 다치게 한 혐의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B 씨는 “시장이 연락이 되지 않고 만나주지 않아 범행을 저질렀다”라고 진술했다.

공직사회가 멍들고 있다. 악성 민원인에 의해 던져진 폭언과 폭행 때문이다. 민원인 위법행위가 좀체 근절되지 않자 일선 자치단체는 홈페이지 내 공무원의 이름을 비공개로 전환했고 전화상 폭언을 일삼는 이들을 대상으로 통화를 거절하는 등 나름의 대응 방안을 마련했다. 정부 역시 최근 민원인 위법행위 대응 지침을 개정하겠다고 예고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존중받는 분위기와 더불어 부족한 공무원 인력을 충원하는 등 구조적인 변화를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리를 채우다 스스로 ‘떠나는’ 더 이상의 공무원이 나오지 않게 말이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폭언·폭행 등 민원인 위법 행위는 지난 2019년 3만 8000건이었으며 2020년 4만 6000건, 2021년 5만 2000건으로 매년 늘었다. 악성 민원에 대한 심각성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됐는데 최근 경기도 김포에서 초임 공무원이 악성 민원으로 고통받고 숨지자 결국 정부는 다시 한번 칼을 빼 들었다. ‘악성 민원 방지 및 민원공무원 보호 강화 대책’의 일환으로 2020년 제정된 민원인의 위법행위 대응지침을 개정하기로 한 것. 개정 지침은 민원인의 폭행 등 위법행위가 발생하면 피해 공무원이 이에 대응할 수 있도록 고소장 작성부터 수사, 재판까지 전담부서에서 지원하고 기관 차원에서 직접 고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와 별도로 현장에선 일선 공공기관 홈페이지 내 공무원의 이름이 사라지고 있다. 대전에서는 지난달부터 대전시를 비롯한 중구·서구·유성구·대덕구, 대전시교육청이 홈페이지 내 직원들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동구는 실명 비공개 전환을 논의 중이다.

지역의 한 자치구 관계자는 “악성 민원인으로 인해 내부적으로 공무원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 사전 예방 차원에서 개인정보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라고 설명했다.

공직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근본적인 문제는 공무원의 수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는 데에서 기인한다고 강조한다. 한마디로 ‘일할 공무원이 없는’ 현실이 악성 민원, 업무 과다 등 열악한 근무환경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의 한 공무원은 “공직사회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공무원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민원인의 입장에서는 빠른 해결을 원하는데 일하는 사람은 적고 그만큼 업무가 밀리니 서비스가 늦어진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여러 보호 대책 중 가장 큰 게 부족한 인력을 보충하는 것이다. 자치단체 중 정원을 못 채운 곳도 많다. 빈 자리를 일이 익숙하지 않은 신규 공무원이 채우게 되면서 악성 민원이 발생, 이를 견디지 못하고 퇴직하는 것이다”라고 씁쓸해했다.

말마따나 공무원 1명당 주민 수는 100명 이상이다. 행정안전통계연보를 살펴보면 자치단체 공무원 1명이 담당해야 하는 주민 수는 2022년 기준 135명이다. 광역자치단체 중 광역시는 369명, 특별자치시는 152명이었으며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시는 271명, 군은 95명, 구는 369명으로 집계됐다.

대전에서 근무하는 10년차 공무원 C 씨는 “민원 업무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즉각적으로 처리해야 하니 신규 공무원이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다. 민원인의 작은 제스처도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고 대응이 쉽지 않다보니 자존감이 떨어져 심리적 부담감도 클 것 같다. 사실 연차가 쌓인 공무원들이 하는 게 적절하지만 인력이 적다”라며 안타까워했다.

30대 공무원 D 씨도 “신규 공무원들이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며 현장을 떠나는 게 공감된다. 폭언을 하거나 화를 내는 민원인이 워낙 많다 보니 공직사회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견딜 때까지 견디다 퇴사하는 게 비일비재하다”라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공무원이 존중받는 문화가 동반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3월 연달아 발생한 김포시 공무원 사망사건과 남양주시 소속 9급 공무원 사망사건 이후 전국의 공무원들이 거리로 나왔다. 떠난 이의 고통을 남은 이들은 공감하기 때문이다.

전국공무원노조 세종충남지역본부 관계자는 “공무원은 시민의 봉사자로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이미지가 각인돼 왔다. 물론 시민의 입장에서 민주적 절차를 통해 각종 서비스를 받는 건 맞지만 최소한 공무원도 현장에서 안전하게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는 분위기는 형성돼야 한다. 구조적인 변화와 맞물려 시민들도 공무원이 안전하게,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kjh0110@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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