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김지현 취재2팀 기자
그는 1년도 안 돼
새로 사 신는다고 했다.
하루 2만 5000보는 기본,
신발창이 닳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이었다.
그는 계속 걸어야 했다.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오랫동안 걸어보기 전까지는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직접 겪어야 타인이 처한 상황과 현실을 알 수 있다는 의미의 인디언 속담이다. 평소라면 인디언의 지혜에 감탄하며 흘려들었겠지만 공감과 배려, 역지사지(易地思之)가 결여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취재 현장에서 대면해보니 그냥 넘길 수 없었다.
기자는 동행취재를 통해 ‘타인의 신발’을 신어볼 수 있다. 그리하여 필자는 얼마 전 아파트 경비근로자를 따라나선 적이 있다. 때마침 대전 지역 경비노동자 고용안정 촉진을 위한 준칙이 개정됐고 대덕구 주민 발안 경비조례가 시행 중인 터였다. 지역에서 경비근로자의 고된 업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으니 기자인 내가 가만히 앉아있을 수만은 없었다. <본보 5월 8일자 1면 등 보도>
흔쾌히 자신의 일터를 열어준 경비근로자는 필자를 마주한 새벽 6시 30분부터 장장 3시간 동안 지상은 물론이고 지하주차장까지 오가며 쉴 틈 없이 움직였다. 생각보다 고된 업무에 기자의 열정은 찰나에 스쳐갔다. 잠시도 멈추지 않고 걸어야 하는 통에 종아리가 욱신거리고 아려왔기 때문이다. 다리가 아프니 갑절 나이든 그의 발끝으로 시선이 닿았다. 그제야 허름한 검은 운동화가 눈에 들어왔다. 정갈한 경비복에 백발을 빗어넘긴 말끔한 그의 차림에서 유일하게 낡은 것이었다. 1년도 안 돼 새로 사 신는다고 했다. 하루 2만 5000보는 기본이니 신발창이 닳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이었다. 분리수거를 하는 곳에서도, 단지를 미화하는 순간에도 그는 계속 걸어야 했다.
경비근로자와 함께 걸어보기 전까지는 구조적인 문제에만 집중해 기사를 작성했다. 물론 그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초단기계약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부분인 건 맞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운동화 한 켤레에 의지한 채 날마다 2만 보를 넘게 걷는 그들의 노고에 감사하고 배려하는 것이 아닐까. 아파트의 모든 시설을 관리하고 속속들이 정비하고 있는 그들의 수고를 감히 갑을(甲乙)이라는 위치로 가늠하기에는 우리사회가 참 양심 없지 싶었다.
기자는 이날 동행취재 이후 분리배출을 할 때 좀 더 신경쓰게 됐다. 그가 그랬던 것처럼 박스에 붙어있는 테이프를 모두 제거한 후 아예 펼치거나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폐지를 담아 내놓는다. 스티로폼은 좀 더 자그맣게 잘라서 버린다. 주차장이나 화단에 버려진 쓰레기가 눈에 띄면 망설임 없이 주워 쓰레기통에 버렸다. 또다른 누군가의 고단한 걸음을 줄여주고 싶어서였다. 누군가의 아버지일, 누군가의 가장일 낡은 운동화를 신은 경비근로자를 위해. kjh0110@gg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