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소년공’ 이재명
국민의 이름으로 돌아오다
가난·역경이 키운 리더
위기때 더 강한힘 발휘
낮은 곳으로 향한 시선
결국 권력 정점에 이름

▲ 소년공 시절 이재명 대통령. 연합뉴스

대통령 이재명. 그 이름은 이제 권력의 정점에 있지만 시작은 누구보다 낮았다. 남의 이름을 빌려 공장에 들어가 납과 염산을 다뤘고 프레스기에 눌린 팔은 평생 굽은 채로 남았다. 그 소년이 대한민국의 조타수가 되기까지 그의 길에는 상처와 싸움, 포기가 없었다.

그의 삶은 언제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경북 안동의 산골, 겨울이면 얼음 낀 냇물에서 손을 씻고 왕복 12㎞를 걸어 학교를 다녔다. 가난은 그를 일찍 공장으로 몰아넣었다. 후각을 잃었고 장애를 얻었다. 그러나 그는 무너지지 않았다. 검정고시로 학력을 갖췄고 하루 두세 시간만 자며 책을 붙들었다. 결국 중앙대학교 법과대학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입학식 날 혼자 교복을 맞춰 입고 교정에 섰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가지지 못했던 시간을 스스로의 방식으로 정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훗날 법조인이 된 그는 권력보다 사람을 택했다. 철거민을 변호하고 노동자의 억울함을 대변했다. 스스로를 ‘법조계에 파견된 노동자’라 불렀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성남시립의료원 설립 운동이었다. 20만 명의 서명을 모은 조례안이 성남시의회에서 단 47초 만에 부결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는 결심했다. 밖에서 싸우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시장이 돼 직접 바꾸겠다고 마음먹었다.

2010년 성남시장에 당선된 그는 전국 최초로 지방정부 차원의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재정을 정리했고 청년배당·무상교복·공공산후조리 같은 복지정책을 실현하며 보편복지의 가능성을 열었다. 2016년 박근혜정부의 지방재정정책에 반대하며 광화문에서 11일간 단식했고 정치인 중 가장 먼저 ‘탄핵’을 외쳤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된 2017년 3월 10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였던 이재명 대통령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참가해 시민들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된 2017년 3월 10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였던 이재명 대통령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참가해 시민들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후 경기지사가 된 그는 성남시에서 시작한 정책을 경기 전역으로 확장했다. 코로나19 위기 속에서는 전국 최초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했고 신천지 교단에 대한 강제 역학조사를 실시하며 공공의 리더십을 보여줬다. 계곡 불법 점유 철거, 닥터헬기 도입, 배달노동자 산재보험료 지원 등은 실천적 정치의 상징이 됐다.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선 0.72%포인트 차이로 윤석열 전 대통령에 석패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한 달도 쉬지 않고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이끌었고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성했다. 같은 해 77.77%라는 득표율로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올라 당원 중심 정당, 공천 개혁, 유튜브 생중계로 당 운영을 투명하게 바꿨다. 수많은 갈등과 376회의 압수수색, 체포동의안 가결에도 그는 중심을 지켰다.

가장 극적인 순간은 지난해 1월 부산 유세 현장에서의 피습이었다. 목을 찔려 정맥이 65% 손상되는 중상을 입었지만 그는 또 일어섰다. 그리고 석 달 뒤 총선에서 175석을 얻으며 야권의 대승을 이끈 그는 그해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처음으로 당대표 연임에도 성공했다.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그는 다시 국민 앞에 섰다. ‘진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며 대선에 나섰고 89.77%의 압도적 경선 득표율로 ‘어대명’을 넘어 ‘구대명(90%대 득표율의 대통령 후보)’이라는 신조어를 남겼다. 선거 직전까지도 사법 리스크와 싸워야 했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국민은 그를 제21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택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취임선서식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취임선서식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준섭 기자 ljs@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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