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부장>
아테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입을 통해 회자된 ‘페리클레스’의 지론이다. 페리클레스는 자유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아테네의 황금시대를 이끈 정치인이다. 기원전 495년에 태어나 425년에 타계했다고 하니 어림잡아 2500년 전 사람이다.
이 땅은 아직도 미완성인 민주정치를, 그것도 평등이라는 이상적 개념까지 농축시켜 그는 2500년 전 행적에 녹여냈다.
권력을 좋이 기록하는 역사의 편향된 포장술과 인간을 신격화하는데 능통한 그리스 사람들의 화술을 감안하더라도 후대가 치켜세울만한 정치인으로서의 스펙트럼이 박제돼 있다. 다음의 소회 한 자락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정치의 힘’ 앞에 주억거리게 한다.
‘우리는 질박함 속에 미(美)를 사랑하며, 탐닉함이 없이 지(知)를 존중한다. 우리는 부를 추구하지만, 이것은 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함일 뿐, 어리석게도 부를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다. 또한, 일신의 가난을 인정함을 수치로 여기지 않지만, 빈곤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함은 깊이 부끄러워한다. 우리는 사적인 이익을 존중하지만, 그것은 공적 이익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서다. 사익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에서 발휘된 능력은 공적 사업에서도 응용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미학과 절제의 미학, 빈부에 대한 담론, 사익과 공익의 함수 등이 과연 2500년 전 시대상에 어울리는 코드인지 헷갈린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용되는 모듬살이 법칙이라고 얼버무리고 싶지만 흠집투성이의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 입장에서 우격다짐조차 물색없다.
“2500년이 지나 인류는 진보하고 있을 터인데도, 20세기 말(저술 시점)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 페리클레스처럼 간결하고 명쾌하며 품위 있는 연설을 할 수 있는 지도자를 과연 가지고 있을까.”라고 반문한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의 한탄조에 그래서 절로 장단을 맞추게 된다.
아테네 정계에 등장한 해부터 무려 30년 동안 거의 매해 국가전략 담당관으로 선출돼 그 대분 의장을 맡았다는 페리클레스를 지금의 정치공학으로 재단하면 독재로 볼 수 있다. 인기영합주의라는 비난도 괘념치 않았다니 권력을 어지간히 좋아했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아테네 시민들이 그에게 끊임없이 기회를 준 저변에는 그 당시 통용될 만한 신뢰와 소통이 깔려 있었다고 우겨본다.
새 정부 인수위원회가 꾸려져 박력 없는 국정이 뿌려놓은 피곤한 민생을 걸터듬고 있다.
대통령 한 명 바뀐다고 경천동지할 일이 벌어질 것이라 믿는 우매한 백성은 없을 것이다. 이반된 민심을 한데 모으는 일도, 바닥에 주저앉은 경제를 부축하는 일도 그렇다. 그렇다고 오늘보다 나은 내일에 대한 희망마저 뭉개는 것은 아니다.
“정치권에서 얘기하는 것은 그 때 뿐이고 안 믿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이번 정부에서는 국민들에게 한 약속은 아주 정성을 들여야 한다. 그 말을 믿을 수 있다고 할 때 굉장한 신뢰가 쌓인다”는 박근혜 당선인의 ‘신뢰받는 정부’일성이 에멜무지로 신성한 주권을 행사한 게 아니라는 약발로 이어지면 답은 보인다.
‘뽑아 놓고 후회한다’ 는 둥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둥 정치를 싸잡아 성토하는 데 이골 난 민심이 '페리클레스의 황금시대‘를 사련하는 것은 애처로운 본능이다. 부디 민심이 천심임을 상기해 ‘이 땅의 페리클레스’로 기억되길 바라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