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식
편집국장
우리는 누구나 성공을 꿈꾼다. 그곳이 어디든 성공이라는 목표를 위해 쉼 없이 달려가는 게 우리네 인간들의 삶이다. 가정에서든 직장에서든 성공적인 삶을 일구려는 노력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기업의 ceo나 국가를 운영하는 위정자들도 다를 바 없다. 기업의 성공을 위해, 국민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심초사하면서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기업의 성공이, 국가의 성공이 곧 그들의 성공이기 때문이다.

어떠한 삶이 성공적인 삶이냐는 추구하는 가치관에 따라 달라진다. 성공이라는 놈은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단적으로 예단하기는 힘들다. 경제적인 가치에 두는 삶, 꿈의 실현에 가치를 두는 삶,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가치를 두는 삶 등 이 모든 것들이 성공적인 삶을 평가하는 주관적인 잣대가 될 수 있다. 어찌 보면 행복의 다른 말이 성공이라 하겠다. 그래서 경제적으로 힘들지만 자기의 꿈을 찾아가는 사람에게 실패한 삶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행복의 조건이 무수히 존재하듯 성공의 조건들도 수없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수많은 조건들을 끊임없이 찾아가고 있는 게 요즘 우리들의 모습이다. 좀 더 나은 미래를 향유하기위해 청년들은 스펙 쌓기에 몰두하고 있으며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주문하고 있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성공하려는 노력이 삶을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마찰과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으나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성공이라는 목표에 접근해가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삶인 것이다. 그만큼 성공은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키워드라 하겠다.

그러나 성공이 아무리 주관적인 가치판단에 의해 평가되는 것이라 해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내가 속한 사회로부터의 평가이다. 나라는 개인존재는 가정과 이웃, 내가 속한 단체로부터 동떨어진 개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인 까닭은 사람과 사람의 결합에 있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은 이런 의미를 담고 있다. 인간은 나 혼자만의 삶이 아닌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과의 어울림 속에서 존재할 때만이 비로소 빛을 발하며 존재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성공이라는 것도 이러한 삶속에서 이루어질 때 진정한 성공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경제적으로 성공했다고 해도 주위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삶속에서 이루어졌다면 그 성공은 진정한 성공이라 말할 수 없는 게 다 그런 연유다. 남으로부터 인정받고 존중받는 삶이 그래서 중요하다.

남으로부터 인정받고 존중받는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남들보다 훨씬 강한 도덕성을 겸비하고, 남들과의 가치관의 공유를 넓혀나갈 때 가능한 일이다. 남과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나만 옳다는 식의 삶으로는 존중과 인정을 받을 수 없다. 남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생각의 공유를 넓히는 과정을 거칠 때 그것이 무엇이든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생각의 공유를 넓힐 때 자기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으며, 그만큼 성공이란 것에 근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지탄의 대상이 되고 그가 속한 사회를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게 한다는 것을 우리는 지나온 역사 속에서 수없이 보고 경험했다. 굳이 역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가 속한 조직체에서도 이런 점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상대방을 존중(인정)하지 않고 자신만 옳다는 식의 행태로 조직의 발전을 더디게 하는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모든 사람은 자라온 자연환경이나 인문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생각하는 가치관 또한 다르다. 추구하는 방향 또한 당연히 다를 수 있다.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것들에서 갈등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갈등이 발전을 이끄는 추진동력을 약화시킨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틀린 게 아니라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생각을 모아가는 노력이 그래서 필요하다. 우리가 소통하는 삶, 배려하는 삶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통과 배려하는 삶을 통해 생각의 공유를 넓힐 때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든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이건, 기업이건, 국가 경영이든 다 마찬가지다. ‘성공하고 싶다면 상대방을 존중(인정)하라’.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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