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 자화상 '가난의 대물림'

얼마 전 서울 출장길 지하철 안에서의 일이다. 아주머니 한 분이 객차 복도를 따라 종종걸음을 치며 웅얼거렸다. 무슨 소린가 귀를 세우고 눈을 돌려보니 두 손을 대접 모양으로 말아 올린 채 “아줌마 한 번 도와주세요.” 라고 되뇄다. 한 눈에 봐도 붓기가 확연한, 아주머니의 행색은 초라해 보였다. 순간 내 이마에 땀이 맺히며 한기마저 돌았다. 손잡이를 움켜쥔 왼손이 몇 번이고 상의 안주머니 지갑을 향해 오르내렸을 뿐, 등 뒤로 스쳐가는 아주머니에게 손을 내밀지 못했다. 그저 멀어져 가는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맥없이 바라만 봤다. 누군가 “이 야박한 사람아” 손가락질 하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날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돌던 말 “아줌마 한 번 도와주세요.”생뚱맞게도 어린 시절 동네 아주머니들이 입버릇처럼 늘어놓던 장탄식이 지하철 아주머니와 오버랩 됐다.“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 서방 복 없는 X는 자식 복도 없다더니…….”왜 그토록 감성적인 고민에 사로잡혔는지, 아직도 아주머니의 음성이 내 마음 한쪽에 웅크리고 있는 것 같다. 그 때 느꼈던 속상함을 전해들은 한 지인은 “그런 사람이 한 둘이냐. 말이야 바로 하랬다고 남에게 구걸할 정신이면 무엇을 못해. 야물지 못하기는.”이라며 연신 지청구를 했다. 하기는 가난은 나라님도 어찌할 수 없다고 하지 않던가. 공연히 오지랖 넓다고 자랑한 꼴이군. 애써 외면해 보려했지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화두, 왜 그 아주머니는 지하철에서 구걸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가난은 창피한 것이 아니라 단지 불편할 뿐이라는 명언이 지금도 혹간 유통된다. 현실을 긍정적으로 바라본 표현이지만 없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폐부가 시린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하다는 것은 단지 불편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빈익빈 부익부도, 가난의 대물림도 우리 사회의 자화상으로 똬리를 튼 지 이미 오래다.제 아무리 복지국가를 강조해도 가난한 사람들이 탈출구를 찾기는 어려운 일이다. 지속가능한 사회보장제도 장착을 국가적 차원에서 고민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데 무작정 퍼주기 식의 한계는 분명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외치던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복지를 전면에 내세우다 심각한 재정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대목이 그렇다. 전문가들은 최근 세계 증시에 한파를 몰고 온 그리스발(發) 재정위기의 주범을 포퓰리즘에서 비롯된 "과도한 복지카드"로 꼽는다. 나라 곳간 빗장을 헤프게 풀었다는 말이다. 나랏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는 인근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영국인들이 최근 총선에서 13년 만에 보수당을 제1당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도 노동당 집권기 재정이 악화된데 따른 반발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비교적 살림이 윤택한 일부 국가들조차 허리띠를 졸라매고 나섰다. 복지의 상징인 연금제도에 매스를 들이대려는 움직임도 여기저기서 감지된다. 유럽은 그렇게 긴축재정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정부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과유불급이 문제라고 볼 수 있는데 기본 값에도 이르지 못한 우리나라의 복지실태를 대비하면 씁쓸하다. 지난해 기준 OECD 주요 회원국의 GDP 대비 평균 사회보장비용은 15.2%다. 3.7%인 우리나라는 명함을 내밀기 쑥스러운 지경이다. 올해 우리나라 복지재정은 81조 원으로 지난해 본예산 75조 원 대비, 8.9% 늘었다.덩치는 역대 최고 수준일지 모르나 속은 그리 알차 보이지 않는다. 장애연금은 장애수당의 변형이요, 노인과 장애인 빈곤층에게 지급하던 한시적 생계급여는 과감하게 칼질했다. 긴급복지지원과 결식아동 급식 추가 지원도 공중 분해됐다. 빙하기에서 헤매고 있는 실업문제를 해결할 총알도 빈약하다. 유럽의 전철을 밟아 재정 위기를 자초하자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없는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에 정부산(産) 보호막이 있다는 감이라도 심어주길 바랄 뿐이다. 이 인회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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