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해고 구제신청 제출 인권 사각 골프장 실상 성토

사회는 특수고용직 외면 80일째 골프장·사회와 맞짱

20년 가까이 하라는 대로 했다, '하녀' 취급을 받아도 눈물만 삼켰다
어느날 해고 통보를 받았다, 이유는 모른다. 바보처럼 있을 순 없었다

‘다들 미쳤다고 했다. 덤벼봐야 너만 다친다고.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힘든 싸움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참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 억울해서.’

20년 가까이 경기도우미(캐디)로 일 해오다 최근 대전 A골프장에서 사실상 해고(계약해지) 통보를 받은 우수민(46·여) 씨의 외로운 투쟁이 시작됐다. 15일이면 꼭 80일 째다. 공식적인 해고나 계약해지 통보도 없고 납득할 만한 이유도 없었다. 자율관리규정 위반에 따른 무기정지. 이게 다였다. 캐디 생활의 끝이 이렇게 비참할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 했다.

이 골프장에서 ‘무기정지’ 처분은 곧 알아서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라는 뜻이다. 따지거나 이유를 묻기라도 하면 ‘괘씸죄’에 걸려 복귀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도 사라진다. 우 씨의 경우가 그렇다. 답답한 마음에 ‘무기정지’ 처분의 이유를 얘기해 달라고 직원에게 전화하면 “이렇게 전화하거나 사무실로 찾아오는 것 자체가 무기정지 사유에 해당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잠자코 있든지 아니면 다른 직장 알아보라는 얘기다. 골프장에 청춘을 다 바치고 이제 나이 마흔 여섯, 이제 어디서 다시 시작하라는 말인가. 우 씨는 ‘경기과 직원들에게 밉보여 그런가보다’라고 추측만 할 뿐 징계에 대한 이유도 모르고 소명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두 달 넘게 아까운 세월을 까먹고 있다. 고용률 70% 달성, 고용의 질 개선을 위해 정부는 달려가고 있지만 오늘도 우리 사회에서 일자리 하나가 아무 이유 없이 줄었다.▶관련기사 5면

“가만히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등신같이 살았나 몰라요. 하라는 대로 다 했어요. 회사가 명령하면 무조건 다 했죠. 겨울철 제설작업에 동원되기도 하고 두 달에 하루 정도는 경기에 나가지 못하고 골프장 허드렛일을 하는 당번이 되기도 했어요. ‘내가 일하는 회사’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죠.

물론 캐디관리규정을 위반해도 벌당번을 서기도 합니다. 꽤 많은 캐디들이 대기누락, 지각, 복장·용모 불량 등으로 사측이 지시하는 일을 하는데 전동카트 세차, 배터리교환 보조, 텐트 물청소, 쓰레기 줍기, 심지어 화장실 청소도 합니다. 골프장 측은 청소용역 없이도 캐디를 활용해 원하는 일을 시킬 수 있으니까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죠. 심각한 건 ‘진상’인 고객의 잘못도 캐디들이 뒤집어 쓴 다는데 있습니다. 사측은 상황 파악도 하지 않고 벌칙을 주는데 이런 일로 벌당을 서게 되면 정말 죽고 싶을 만큼 자존심이 상하죠. 캐디를 ‘하녀’로 취급하지 않고선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 골프장에선 비일비재 합니다.”

우 씨는 이유 없는 골프장 측의 ‘무기정지’ 처분이 억울하다며 지난달 4일 충남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출했다. 그런데 우 씨를 더 괴롭게 한 사측의 이유서가 도착했다. 우 씨가 유흥을 일삼으며 외부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하는 등 도우미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골프장의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켜 이러한 도우미(우 씨)와는 같이 근무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긴 캐디 조장 3명의 요청서가 있어서 ‘무기정지’ 처분을 내렸다는 게 골프장 측의 답변이었다. 우 씨는 지노위에서의 공방이 이어지면서 정말 분노가 치솟아 오른다고 했다. ‘캐디 하나 몰아내려고 이제 별 짓을 다하는구나.’

우 씨가 더 화가 나는 건 특수고용직 노동자에 대해선 아무도 도움을 주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에 있다. 우 씨는 골프장에서 쫓겨난 뒤 인권위와 고용노동부 등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한결같이 지노위에 구제신청을 하라는 답변뿐이었다. 결국 알아서 근로자로 인정받아야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우 씨의 사례와 같이 캐디에 대한 근로자성(性) 인정 관련 법정공방에서 캐디의 지위는 십 수 년 째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 ‘을(乙)’이다. 개인사업자로서 내야 할 세금도 내지 않는데도 말이다. 법과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캐디의 존재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우 씨는 지금도 골프장은 물로 우리 사회 시스템과도 맞짱을 뜨고 있다. 우 씨가 퇴출된 이후에도 이 골프장에선 6명의 캐디가 일을 관 뒀다. ‘무기정지’를 당한 한 캐디는 “일하러 가는 게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기준 기자 lkj@gg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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