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부장
‘전두환 추징법’이 이슈다. ‘전두환’은 군부독재시절을 이고 산 수수한 국민들에게 결코 고운 소리 듣지 못하는, 그러나 일국의 대통령이었던 바로 그 인물이다. 전직 대통령을 들먹인 존칭 없는 법 이름도 민망한데 법 속살은 국치(國恥)에 다름없다. 지난 1995년 내란죄 및 반란죄 수괴 혐의로 구속 기소돼 사형과 무기징역, 사면이라는 너울을 탄 그에게 특가법 상 뇌물수수죄가 적용돼 추징금 2200억 원이 족쇄로 남았는데 이중 현재까지 1670억 원이 미납상태고 이를 강제 징수하기 위한 법안이 ‘전두환 추징법’이다.
그의 말마따나 실제 전 재산이 29만 원이라면 모질고 악랄한 법이다. 껍데기를 벗기면 벗길수록 자식들과 친인척을 세탁기 삼은 은닉의 의혹들이 쏟아져 나온다니 하마터면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힐’ 뻔했다.
멍석이 깔리자 물꼬 터진 논둑마냥 제2의 전두환법이 국회에서 속속 발의되고 있단다. 사형이나 무기징역은 면했을지 몰라도 말년 운은 그다지 좋지 못한 모양이다. 나는 새도 떨어뜨렸던 무소불위 권력의 말로가 참 안쓰럽다. 김 서방, 이 서방은 꿈에도 꾸지 못할 부귀영화가 추접하게 오염된 결실이었다면 이 또한 참 안쓰럽다. 이 정도면 네로와 같은 로마시대 폭군들에게 뒤끝 작렬로 적용됐다는 ‘기록말살형’에 버금가지 않을까 싶다.
전기, 물 쓰듯 하다간 큰 코 다친다. 전력난이 애꿎은 국민들에게 연일 위협구를 날린다. 내 돈 내고 쓰는 전기를 그것도 삼복더위에 냉방기조차 마음대로 켤 수 없는 지경이다. 전력난이 우려될 경우 아껴 쓰는 것은 국민 된 도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전력난의 원인 중 하나인 ‘먹통 원전’과 원전비리에 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직원들이 연루됐다는 점은 김 서방, 이 서방 배알이 꼴리는 장면이다. 생선가게 고양이에게 맡겼다 뒤탈을 분담하는 꼴이니 그렇다. 더구나 굴비 엮은 새끼줄이 좀체 삭지 않고 제2, 제3의 비리를 들춰내는 모양이 앞으로도 여럿 쇠고랑 차게 생겼다.
요즘 ‘로마인 이야기(시오노 나나미 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니 재미 보다는 연신 펜을 흘기며 주옥같은 명언들 놓칠세라 때 아닌 ‘열공’ 모드 중이다. 왜 이 책을 정치하시는 분, 행정하시는 분, 경제하시는 분, 자라나는 청소년 등에게 필독서로 권장하는지 행간이 말해주고 저자의 촌철살인이 말해주고 우리의 현실이 말해준다.
전두환 법과 원전비리를 덧댄 이 땅의 슬픈 자화상을 일깨울 대목을 마침맞게 눈에 담았다.
로마제국의 오현제(五賢帝) 중 한 명인 안토니누스 피우스에게 아내인 피우스티나가 인색함을 타박하자 “당신도 참 어리석군. 제국의 주인이 된 지금은 전에 가졌던 것조차 우리의 것이 아니오”라며 나무랐단다. “국가 소유로 돌려야 할 재산을 필요하지도 않은데 소비하는 것만큼 비열한 행위는 없다”고도 했단다. 하긴 역대 황제들이 등극 후 거리낌 없이 국고에서 시민들과 군인들에게 하사한 일시하사금조차 자신의 사재를 털었다는 사람이니 그럴 만도 하다. 물론 후대 역사가들의 호평이 곁들여진 증언으로 회자된 내용이겠지만 공공을 위해 사유재산을 쓰는 것이야 말로 부자로 태어난 사람의 책무라고 여겼고, 황후를 여의자 아내의 유산에 자신의 재산을 보태 기금을 설립해 불우 소녀들의 결혼자금을 지원했다는 안토니누스를 현제로 불러도 그리 과대포장은 아닌 듯하다.
본분을 망각한 극히 일부의 공직 또는 공기업 직원들이 새겨들어야 할 구조조정에 대한 로마 황제의 지론도 와 닿는다.
“책임을 다하지 않는 자가 계속 보수를 받는 것만큼 국가에 해롭고 헛된 행위는 없다”는 게 그것이다. 안토니누스 황제, 그는 1800∼1900년 전인 서기 2세기를 산 사람이다. 23년 재위 기간 동안 선정도 폈고, 실정도 했을 것이다. 후세들에게 기억되는 그는 성군이다. 일국의 대통령이 은닉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재산을 두고 숨바꼭질을 하는 요즘 우리에게, 양심을 재물과 바꿔먹는 공공(公共)의 적이 판치는 요즘 우리에게 살아생전 안토니누스라면 무엇으로 위로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