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출연 장학금 등 가동 독서 등 문화스펙도 제고 학생들 '자가발전' 도와

상아탑이 지쳐 있다. 빙하기에 매몰된 취업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 안쓰럽다. 사회진출의 문턱에서 ‘지방대생’이라는 굴레는 참 거추장스럽다. 순위 매기기 좋아하는 사회는 좀처럼 지방대생들이 비빌 언덕을 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 엄동설한에 “추천은 응하겠지만 (취업)구걸은 하지 않겠다”는 배짱 두둑한 이가 있다.

인재 육성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빚고 있는 한남대 경영정보학과 강신철(55·학과장) 교수.

그는 목마른 제자들을 물가로 안내하는 현명한 길라잡이다. 풍파에 주눅 들지 않는 학자적 양심에게 귀 기울여봤다.

#1. 이유 있는 반란, 자신감을 키우다

한남대에 경영정보학과가 개설된 것은 1996년이다.

연륜은 짧지만 신참 취급하다가는 큰 코 다친다. 입학지원율, 재학생 유지율, 취업률 등 각종 지표에서 수위권이다. 대학에서 전략적으로 키운 게 아닌가 싶었는데 자가발전이란다. 신생학과의 핸디캡을 딛고 시나브로 학내를 주름잡는 간판으로 우뚝 서게 한 견인차가 강 교수다. 학과의 성장판(成長板)을 확장시킨 교수 출연 장학금, 졸업인증제, 지식기부(문화의 날)의 물꼬를 트고 지속발전의 폐달을 밟아온 그는 아직도 목마르다.

“신생학과다 보니 인지도가 낮을 수밖에 없고, 학생들에게 무엇인가 해 주고 싶어도 동문이 없다 보니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교수 출연 장학금이에요. 월급의 일부를 떼 기금을 조성하자 제안했고, 교수님들의 동참으로 단추를 꿸 수 있었습니다.”그렇게 마련된 종자돈 4000만 원은 ‘촉수엄금’, 학교 발전기금 본부에 맡겨 불리고 있다. 기특하게도 하나 둘 배출된 졸업생들이 후배들을 위해 지갑을 열었다. 병원장이 된 한 동문은 최근 매학기 300만 원씩 3년 동안 지원하겠노라 약속했다. 종자돈을 제외한 나머지 기금은 오롯이 재학생들의 단기 해외어학연수 밑천으로 요긴하게 쓰인다.

“호텔을 갖춘 필리핀의 한 사범 대학으로 연수를 보냅니다. 2주짜리 현지생활이 영어 실력 향상에 뭔 도움이 될까 싶지만 영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털어내는 데는 충분합니다. 인식 전환의 기폭제라고 할까요.”

뚝심으로 밀어붙인 졸업인증제도 효험이 탁월하다. 졸업을 위해선 1000점을 따야한다. 가령 토익점수 900점을 획득했으면 나머지 100점은 각종 자격증으로 만회하는 시스템이다. 제자들 잘 되라고 벌인 일인데 안착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졸업인증제를 도입한 대학은 많으나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대학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 대학 다른 학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복학생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적지 않았어요. 교수님들도 시큰둥했고요. 전공 특성 상 영어를 못하면 경쟁력을 갖출 수 없습니다. ‘내게 손톱만큼이라도 이득이 될 것이 무엇이냐’고 설득해 어렵사리 시작했습니다. 지금요. 4학년들 영어실력이 영문과 학생들보다 낫습니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과 대기업, 금융기관 등에 취업한 학생들이 부지기수다. 그런 선배들을 보면서 지방대생이라는 꼬리표에 주눅 들었던 재학생들도 자신감을 충전했다.

#2. 경쟁력은 수단일 뿐, 현명한 인재를 위한다

‘경영기획과 발표’라는 과목을 개설, 설득커뮤니케이션과 프리젠테이션 능력을 제고한 결과 응모전을 휩쓸고 있다. 내년부터 창업관련 5개 과목을 신설해 CEO의 자질을 함양시키겠단다. 영어실력과 자격증, 해외연수 경험 등이 농축돼 양질의 스펙이 됐다.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은 아니다.

준비된 인재를 양성하는 그가 취업 경쟁력은 수단일 뿐이라고 말한다. 2주에 책 한 권, 4년간 100권 읽기 캠페인을 2002년부터 전개했다. 대학 캠퍼스에서 독서 캠페인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여봐란듯이 정착시켰다. 취업에만 함몰시키는 것 같아 2005년부터 매주 수요일을 ‘문화의 날’로 지정해 소양교육의 고삐를 당겼다. 문화의 날은 지식 기부의 장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미술관 큐레이터부터 스포츠댄스 강사까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빙합니다. 졸업생들도 자주 호출하고요. 친분이 두터운 다른 대학 교수님들도 모십니다. 얼마 전 다녀간 문국현 전 국회의원도, 내달 1일 강의 예정인 권오을 국회 사무총장도 죄송하지만 무료 봉사입니다. 권 총장의 경우 트윗으로 교분을 쌓은 뒤 ‘지방대 학생들은 중앙의 거물급 정치인을 만날 기회가 없다’고 호소했습니다. 올해 한 번도 강단에 선 적이 없다는데 흔쾌히 응해주시더군요.”

학생들의 반응이 폭발적일 수밖에 없다.

"계산적으로 따진다면 수능 성적 280점짜리 입학생을 340-350점짜리로 배출시킨다고 봐요. 교회 추천으로 입학했으나 미국 MBA를 거쳐 굴지의 기업 미국 현지법인에 취업한 한 졸업생이 그러더군요, 자신에게 기적이 일어났다고. 공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겁니다. 제자들에게 돈이나 권력을 얻어 행복을 느끼려하지 말라고 늘 당부합니다. 수단을 좇으면 지표를 잃게 될 경우 좌절의 파이가 커지기 마련입니다. 주변과 어울려 즐겁게 사는 삶을 갈구했으면 해요.”

#3. 정 맞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난 돌

왜 잘난 척하느냐는 둥, 왜 위화감 조성하냐는 둥 숱한 시기와 질투가 그의 곁을 맴돌았다.

“귀 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변화와 개혁은 반드시 누군가가 앞에서 끌고 가야하니까요. 그것이 옳은 일이면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말고 전진해야 한다고 봅니다.”

몇 해 전 진실을 외치다 해임됐던 그다. 꼬투리를 잡아 늪으로 빠뜨리려는 온갖 획책이 난무했었다고 회상한다. 2년간의 피 말리는 싸움 끝에 복직했다. 229명의 교수들이 탄원서를 냈고, 월급을 쪼개 변호사 비용을 대 줬다. 학생 5000명과 교수 3/4이 그를 지지했단다. 폭풍의 한 복판에서 그는 의연했다.

“저 자신을 다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조작된 의혹을 떨쳐버린 것도, 주변 사람들을 검증할 수 있었던 것도 시련의 대가라고 봅니다. 지칠 무렵 복직을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그러면 제자들에게 불의를 참으라고 가르치는 꼴이 될까 싶어 접었습니다. 적 없는 친구는 사귀지 말라고 합니다. 주관이 없는 사람들은 뒤통수를 때리거든요. 소신과 지조를 지켜달라고 주문합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 한다. 다른 사람의 정신세계와 생각에 대한 몰이해는 무지의 벽을 쌓게 된다는 판단에서다. 그래서 ‘우리 대전 같은 책 읽기’를 통해 정신을 공유하는 사회운동에 불을 지피려 한다. “출세 지향적이고 경쟁지향적인 사회에서 인간은 소외를 느끼게 됩니다. 스펙은 수단에 불과하다는 지론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투명한 화수분이 빚어내는 인재 육성 패러다임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글=이인회 기자
사진=이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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