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이인회 사회부장

요즘 흡연자들 사이에선 정부의 담뱃값 인상 방침이 꽤 불편한 화두로 오르내린다. 대부분은 욕지거리에 가까운 푸념이다. 개중에는 ‘세금 더 내기 싫어 이 참에 담배를 끊겠다’는 제법 결연한 의지를 보이지만 그리 믿을 만한 각오로 들리진 않는다.

거의 모든 질병의 주범으로 몰린 데다 애먼 사람들의 건강까지 해치는 말 그대로 백해무익한 기호품과의 이별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만 한 사람들은 안다. 이 대목에 비흡연자들이나 흡연자들 사이에서 상종 못할(?) 부러움의 대상인 금연 성공자들은 ‘의지박약’을 덧댄다는 것도 잘 안다. 흡연을 권장하거나 민폐를 정당화하자는 것은 아니나 못되면 조상 탓이라고 우리나라 국민, 특히 ‘담배 권하는 사회’를 관통한 성인 남성들의 흡연에는 국가의 책임도 있다는 개똥철학을 비벼본다.

건장한 청춘을 저당 잡혀야 했던 군대라는 특수성 측면에서 말이다. 모진 훈련 뒤 ‘담배 일발 장전’은 꿀맛 같은 휴식을 의미했다. 그 몹쓸 담배는 전매했던 국가에서 모든 장병에게 지급했다. 알량한 담배 몇 갑이 청춘의 노고를 달래는 삯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군에서도 공짜로 지급된 담배를 가까이 하지 않은 건전한 이들이 있다. 비겁한 변명으로 들리겠지만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흡연 친화적인 환경에 노출됐던 게 사실이다.

건강을 해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육체적·정신적 피로를 씻어내는 악(惡)의 유혹은 달콤하고 대부분의 흡연자들은 이를 들어 백해무익만은 아니라고 애써 항변한다.
물가를 관리하고 억제해야 할 정부가 담뱃값을 80%나 그것도 한꺼번에 올리겠다고 나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세운 명분은 국민건강증진이다. 흡연율 방정식 추정결과, 가격정책이 비가격정책보다 효과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인상폭인 2000원은 가시적 흡연율 감소의 최저선이라는 판단이란다. 공식대로라면 오는 2020년 남성흡연율을 29%까지 낮출 수 있다는 게 정부의 계산이다.

그러나 정부의 애민 정신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게 문제다. 여전히 주민세, 자동차세와 더불어 ‘서민 증세’ 논란의 중심에 있다. 이 대목에도 정권의 아킬레스건인 소통 부재를 꼬집는 목소리가 들린다. 담뱃값 구성은 담배소비세와 지방교육세, 부가가치세, 개별소비세 등 세금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아무리 국민건강으로 포장해도 증세로 인식하는 게 당연하다.

차라리 “당신들의 건강을 개선하고 뱉어 놓은 복지공약 때문에 나라 살림이 어려우니 세수 확보에 동참해 달라”고 이해를 구하고 설득하는 편이 솔직하다. 오죽하면 담뱃값 인상을 두고 새누리당 내에서조차 ‘눈 가리고 아웅’ 보다 복지재원 때문에 불가피한 인상이라고 솔직히 털어놓는 게 도리라는 쓴소리를 하겠는가. 증세는 되도록 안 하고 한다면 여론수렴 절차를 거치겠다던 대통령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저 속전속결만 있었을 뿐이다.

정부의 주장대로 가격정책이 흡연율을 떨어뜨리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부자도, 서민도 같은 값을 치르고 구입하는 기호품이라는 점에서 서민들에게 부담이 클 수밖에 없고 이런 추론을 대입하면 서민층의 흡연율은 인위적으로 끌어내릴 수 있을 게다.

누군가에게 담배 한 개비는 세상만사 시름을 잠시 덜어 놓는 사치일 수 있다. 골프, 호사스런 술자리, 기타 등등 고상한 취미 생활로 일상을 탈출하는 누군가의 그것처럼 말이다. 제 몸 생각해 금연하는 게 아니라 담배 살 여력이 안 돼 궁상을 떨어야 한다면 그 신세 참 처량할 일이다.

흡연이 해롭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담배 연기 없는 세상은 어찌 보면 흡연자 입장에서도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일 수 있다. 홀연히 초등학교 은사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시장 경제를 설명하면서 “어떤 물건 값이 한 달 수입 1000원인 사람에게도 10원이고 100원인 사람에게도 10원이면 그 값이 오를 때 누구에게 치명적이겠느냐”고 물으셨다. 쌀값과 담뱃값 등을 열거하면서 모든 물산을 그 사람의 수입 대비로 가격을 매기면 부와 가난의 간극이 좁혀질 수 있다는 오래 묵은 짙은 탄식이 오늘따라 더 크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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